지난 5일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승무원의 땅콩 서비스에 문제를 제기하며 여객기를 회항시키고 사무장을 내려놓으며 발생한 이른바 ‘땅콩 회항’ 사태가 10여일 만인 17일 조 전 부사장의 검찰 출두로까지 이어졌다. 그사이 벌어진 주요 사안들을 사진과 함께 되짚어본다.
△2014년 12월 5일 = 0시 50분(현지시각)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KE086 1등석에 탑승한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승무원의 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박창진 사무장을 질책했다.
당시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중이었으나, 다시 탑승구로 돌아가 박 사무장을 내려놓고 다시 출발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사태가 전국구를 넘어서 전 세계적인 논란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물론 당사자인 박 부사장도) 예상 못했다.
“항공사 부사장이자 오너의 따님이 비행기를 돌리라는데 감히 누가 태클을 걸까.”
△12월 8일 = 언론을 통해 ‘땅콩 회항’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고, ‘오너 횡포’, ‘전대미문의 갑질’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증폭됐다. 이제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게 될 상황이었지만, 그 사실을 대한항공만 몰랐다.
대한항공은 이날 저녁 “비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항공기를 제자리로 돌려 승무원을 내리게 한 것은 지나친 행동이었다”고 사과하면서도 “사무장을 하기시킨 이유는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기 때문으로, 조현아 부사장의 문제 제기 및 지적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말로 조 전 부사장을 감싸면서 책임을 승무원에게 떠넘겨 비난을 자초했다.
조 전 부사장의 입장 표명은 없었고, 대한항공 뒤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12월 9일 =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가 조 부사장을 항공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한다고 발표했다.
IOC회의 참석 후 이날 오후 귀국한 조양호 회장은 귀국 즉시 인천공항에서 임원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고, 이 자리에서 조현아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 및 호텔사업부문 등 대한항공 모든 보직서 퇴진했다. 하지만 부사장 직함과 칼호텔네트워크, 왕산레저개발, 한진관광 등의 대표이사직은 유지했다.
나중에 조용해 지면 슬그머니 다시 복귀하겠다는 속내가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12월 10일 =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가 조 부사장을 서부지검에 고발하며 욕설·고함 의혹을 제기했다. 여론이 더 악화되자 조 부사장은 사표를 제출하고 대한항공 부사장직에서도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칼호텔네트워크, 왕산레저개발, 한진관광 등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은 내려놓지 않았다. 조 부사장의 직접적인 사과나 입장 표명도 여전히 없었다.
△12월 11일 = 국토교통부가 이번 사건 조사를 위해 12일 조 전 부사장의 출석을 요청했지만, 조 부사장은 거부했다. 대한항공은 이미 자사 소속도 아닌 조 전 부사장을 대신해 이날 오후 2시께 ‘조현아 전 부사장의 12일 출두는 당장 어려우나, 국토부 조사에 성실히 임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상황의 심각성을 덜 실감했거나, 국토교통부가 만만하게 보였던 듯 하다.
하지만, 검찰이 나서자 태도는 달라졌다. 검찰은 이날 대한항공을 압수수색해 항공기 운항기록, 조종실 음성녹음 파일, 탑승객 명단 등을 확보하고 조 전 부사장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대한항공은 이날 오후 6시께 ‘조현아 전 부사장이 12일 오후 3시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기 위해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출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2월 12일 = 드디어 ‘아버지’가 나섰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큰 딸’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해 대신 사과하며 머리를 숙였다.
이날 당사자인 조현아 전 부사장은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출석하며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직접 자신의 입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다. “승무원들에게 직접 사과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대한항공의 ‘과잉충성’은 또 다시 역효과를 만들어냈다. 이날 조 전 부사장이 출석하는 자리에 대한항공은 다수의 직원들을 투입, 현장을 통제하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악재도 발생했다. 이날 조 전 부사장은 폭행과 폭언 등에 대해 “처음 듣는 일”이라고 일축했으나, 박창진 사무장은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 전 부사장으로부터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했으며 대한항공으로부터 거짓 진술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12월 13일 = 국토부가 조사하지 못했던 결정적인 증인을 검찰은 찾아내 조사했다. 검찰은 이날 KE086 항공기 1등석 승객 박모 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박 씨는 조 전 부사장이 고성과 함께 승무원의 어깨를 밀쳤다고 증언했다.
대한항공이 모형비행기와 달력을 가지고 박 씨를 회유하려 했다는 증언까지 나오자 일부에서는 동정론까지 제기됐다. 비행기 1등석 타고 다닐 만한 사람을 장난감으로 회유하려 들다니. “저 사람들 의외로 엄청 순진한 게 아닐까”
△12월 14일 = 조 전 부사장이 사과를 위해 마카다미아 제공 승무원과 박창진 사무장 집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해 쪽지만 남겼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대됐는데 그들도 박 전 부사장과 얼굴 마주치는 게 좋을 리는 없다. 며칠만 서둘렀으면 모양새가 좀 더 좋았을 것을.
△12월 15일 = 박창진 사무장이 국토부 재조사를 거부했다. ‘국토부-대한항공 한통속’ 얘기가 돌며 ‘칼(KAL)피아’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박 사무장이 그곳을 제 발로 찾을 이유는 없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마카다미아 제공 승무원과 박 사무장 집을 다시 찾았지만, 사과는 또 다시 불발됐다. 박 사무장은 검찰에 출두해 참고인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에게 17일 오후 2시까지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신분은 박 사무장과 같은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다.
△12월 16일 = 국토부는 대한항공에 대해 운항정지 또는 과징금 부과 행정처분을 결정하고 조 전 부사장을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날엔 국토부가 박 사무장을 조사할 당시 약 19분간 대한항공 객실 담당 상무를 동석시킨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칼피아’ 의혹이 한층 짙어졌다.
△12월 17일 = 오후 1시 50분. 조현아 전 부사장이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에 출두했다. 국토부 조사를 받으러 갈 때보다 한층 더 수척한 표정이었으며, 사과를 할 때도 고개를 더 많이 숙였다. 얼굴을 가린 긴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눈물이 비치기도 했다.
국토부 출석 때와는 달리 수행원도 없이 조 전 부사장 혼자였다. 더 이상 논란거리를 제공하기 싫은 듯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죄송하다’는 말만 남겼다. 재벌가의 딸로 태어나 지금껏 귀한 대우를 받고 살아오다 평생 가장 외롭고 고통스런 상황에 처했음을 짐작케 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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