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임대업자' 대우건설의 미필적 고의


입력 2015.02.10 16:27 수정 2015.02.13 18:35        박민 기자

[기자의 눈]부실 전대차 계약 방조 피해 키운 의문

현명한 대처로 피해 최소화에 머리 맞대야

최근 대우건설과 임대업자, 세입자 간의 전대차 부실 계약으로 세입자들의 수십억원 전월세 보증금 피해가 발생한 서울 천호동 대우한강 베네시티. ⓒ데일리안 박민 기자

미필적 고의란 법적 용어가 있다. 자기의 행위로 인해 어떤 범죄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결과의 발생을 인정해 받아들이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즉,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해 피해를 양산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의 행위에 대해서만 들여다볼 것이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과실인지도 엄중히 따져봐야 한다.

이번에 제보 받은 사건이 이러했다. 사연인 즉슨, 대우건설이 집주인으로 되어있는 서울 천호동 ‘대우한강 베네시티’ 세입자 60여가구는 지난해 5월 전대차(임차한 주택을 재임대하는 것) 계약이 종료됐지만 전·월세 보증금을 전부 돌려받지 못했다.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모두 합하면 총 29억원에 달하지만 되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은 7억6000만원이 전부다. 약 74%를 떼이게 된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 임대관리업자가 대우건설과 보증금 9억원에 60여가구 임대권계약을 맺고 이를 다시 29억원으로 ‘뻥튀기’ 해 전대차 계약을 했는데, 집주인인 대우건설은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 이 가운데 임대관리업자가 회삿돈을 횡령하면서 결국 세입자들의 보증금 피해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상 대우건설이 피해를 방조한 셈이다.

임대관리업자는 이 사건으로 인해 법원으로부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횡령)·사기·고용보험법위반 등으로 집행유예 3년,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만약 이 업자가 횡령한 돈을 다 써서 변제할 능력이 없다면 결국 세입자들의 피눈물같은 보증금은 허공으로 날아가버린다.

그렇다면 대우건설은 책임이 없을까? 현행법상 대우건설과 임대차 계약을 한 임대관리업자가 다시 세입자와 재임대(전대) 계약을 할 때 대우건설이 보증금이나 월세 규모에 대해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29억원 보증금 미반환 문제는 임대업체와 세입자간의 문제지 대우건설이 관여할 사안은 아니다는 해석이다. 이 때문에 더욱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법의 맹점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계약을 체결해놓고 ‘보증금 피해’를 키운 대우건설은 앞서 언급한 미필적 고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대우건설은 임대업자가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상황임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세입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점도 있다.

또한 대우건설과 임대업자와의 유착이라는 의혹의 꼬리표도 붙는다. 이 업자는 대우건설 간부에게 가족해외여행 등의 경비를 건넨 것으로 드러나 검찰의 추가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측 관계자는 당시 계약을 담당한 직원은 현재 퇴사했기 때문에 정확한 내막을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늘어놓았다. 후에 큰 일이 날 것을 염려해 '꼬리짜르기'를 한 것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데일리안 경제부 박민 기자
아울러 일개 임직원의 잘못으로 치부하기에는 세입자들의 피해가 너무 크다. 특히 대우건설처럼 조직관리가 체계적인 대기업에서 가족여행비 등의 뒷돈을 받은 위법 행위에 대해 당시 감사는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의문이 든다. 애써 모른척 방조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여기 있다.

현재 대우건설은 전대차 세입자들과는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며 세입자들을 상대로 퇴거통보와 명도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재계약을 원하면 12개월 동안 보증금 무이자 분할 납부를 지원해주거나, 최초 임대업자가 대우건설과 체결한 보증금 9억원에 대해 일부인 7억6000만원만을 세입자들에게 보전해줄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루 아침에 수억원의 보증금을 날린 세입자들은 가뜩이나 전월세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길거리에 나 앉을 상황이다. 이번 '전대차 보증금 미반환' 사건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과실인지 여부는 법이 판단할 사안이지만 그보다 그동안 업계에서 비교적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아왔던 대우건설이기에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해 보다 현명하게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민 기자 (myparkmin@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박민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