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녹취록 잔혹사 "이거 녹음되는거 아니죠?"
안상수 전대표 '자연산' 발언부터 이완구 '패널 빼'까지
“이거 혹시 설마...지금 녹음 중인 건 아니죠?”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새누리당 관계자가 탁자 위에 놓인 스마트폰을 보고 한 발언이다. 비록 농담조로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녹취에 대한 씁쓸함이 배어있었다. 원만하게 진행될 것 같았던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김치찌개 회동’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거친 풍랑을 겪은 영향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의 ‘녹취록’을 둘러싼 파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간 당내 주요 인사들은 현안마다 사적인 자리에서 스스럼없이 던진 발언이 녹취록을 통해 그대로 공개되면서 곤혹을 겪기도 했다.
안상수 전 대표는 임기 내내 말실수에 시달렸다. 그의 인지도를 높인 계기가 됐던 ‘보온병’에 이어 ‘좌파교육’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앞선 두 사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이었다면 ‘자연산’은 사적인 자리에서 벌어진 사태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010년 12월 22일 서울 용산구의 한 중증장애인아동시설에 방문한 이후 여기자 3명과 점심식사를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요즘 룸에 가면 ‘자연산’ 찾는다고 하더라. 요즘은 성형을 너무 많이 하면 좋아하지 않아. 자연산을 더 찾는다고...”라고 발언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여기자는 즉각 ‘성희롱성 발언’이라고 항의했고, 이는 한 인터넷언론에 의해 그대로 기사화됐다. 이후 야당의 연이은 공세 속에 안 전 대표는 결국 같은 달 26일 “어려운 시기에 여당 대표로서 적절하지 않은 발언과 실수로 인해 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두 번째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권영세 주중 대사다. 그는 대선을 앞둔 12월 1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일부 기자들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두고 주고받은 발언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곤혹을 치렀다.
박범계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3년 12월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제보 받아다는 권 대사의 음성 녹음과 녹취록을 공개하며 “대화록이 당시 불법 유출됐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안 전 대표의 경우와 달리 취득 과정을 두고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당초 음성을 녹음한 모 기자의 동의하에 습득한 것인지가 핵심쟁점이었다. 결과야 어찌됐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정치권은 정쟁에 빠져들었고, 권 대사도 예외일수는 없었다.
세 번째가 바로 이완구 후보자다. 그는 총리 후보자로 지명 받은 직후 일부 일간지 기자들과 ‘김치찌개’를 먹으며 ‘언론에 대한 외압’ 등 내뱉어서는 안 될 치명적인 말을 쏟아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해당 발언을 기사화하지는 않았지만 음성녹음파일이 새정치연합 의원에게 넘어가면서 청문회 과정에서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야당은 ‘언론에 대한 외압’이라고 연일 공세를 펼쳤고, 여당은 ‘불법 취득’이라고 응수했다. 정치적 격돌이 이어지는 와중에 음성녹음파일을 건네준 기자가 소속된 한국일보는 공개사과를 했지만 취재윤리가 도마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정치권이 ‘음성녹음’을 꺼리는 이유는 향후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됐을 경우 빠져나갈 방안을 마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자의 기억에 의존해 정리되는 ‘워딩’과 달리 음성녹음을 근거로 작성되는 ‘녹취록’은 대부분 당시 발언과 100% 일치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사소한 잡담을 포함해 현장의 분위기, 은밀한 이야기까지 모두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당사자들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과 달리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새누리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과거 여의도 모처에서 기자들과 만나자마자 녹음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당시 기자들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휴대폰을 멀찌감치 놔두거나 외투 주머니에 넣어두기도 했다.
일부 의원들은 본인과 평소 친분이 깊어 자연스레 ‘오프 더 레코드’가 지켜지는 기자들과만 교류를 가지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면 사전에 “사석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오프인거 알지”라고 예방조치를 취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당내 한 관계자는 12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공인으로서 사적인 자리에서도 말을 조심해야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근 들어 너무 빡빡해진 경향이 있다”며 “억울하다고 해도 기사화되고 나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알아서 조심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