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훼손하고 한국사 교과서 검정제 고집하나
<이종철의 으라차차 대한민국>검정제 존재 이유 스스로 부정
한국사 교과서를 출판사 중심의 검정제에서 국가 주관 하에 펴내는 국정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의 향배가 반년을 넘기고 있다. 작년 10월까지 그 여부를 결정하겠다던 교육부는 11월로 연기했다가 아무런 말도 없이 시일을 끌었고 이제 국정제는 물건너 가나 보다 했지만 연초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국정제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시사하면서 관심을 환기시켰다.
연초 1월 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주최 토론회에서 황 장관은 “역사를 3가지, 5가지로 가르칠 수 없다. 학생들을 채점하는 교실에서 역사는 한가지로 권위있게 가르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 라고 말해 기존의 입장을 재획인했다. 그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오히려 분쟁의 씨를 심고 갈라지는 것은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어려운 부분이지만 조만간 정부 입장이 정해지면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일반 국민들의 시선에 국정제는 왠지 구시대적인 느낌이 있다. 국가가 단일하게 한다는 것에 대한 묘한 거부감도 있다. 그러나 국정제와 검정제가 어떤 것인지 특히 국정제가 왜 제기되었고 검정제 하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 인과관계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막연한 거부감이 되지 않으려면 이런 점에 대해 좀 더 알아둘 필요가 있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용 도서(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2 조)"를 말한다. 즉 1974년부터 2010년까지 고등학교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국사 교과서를 사용했다. 2013학년도까지 단일한 국정 교과서를 가지고 수능 시험이 치러진 것이다.
고등학교 국사가 검정화 되어 다종 교과서 중에 선택해 사용하게 된 것은 2011년도 부터였다. 검정은 출판사가 저자를 섭외하여 교육 과정에 따라 교과서를 집필한 뒤 검정기관에 출원하고 이를 통과한 교과서 중에서 각급 학교에서 채택하여 사용토록 하는 체제이다.
그동안 검정제 하에서 두 번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발행되었다. 첫 번째는 2011년이었고 두 번째는 2014년이다. 그런데 2014년 두 번째 검정 교과서를 두고 큰 논란이 빚어졌다.
검정제의 본 취지는 다양한 시각의 교과서를 발행하여 학교의 교과서 선택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14년 두 번째 한국사 검정 교과서를 검정하고 채택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검정제의 취지가 크게 훼손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검정을 통과함은 물론 학교 일선에서 채택한 교과서를 협박 전화까지 해서 결국 채택 철회를 하게 만든 행태는 검정제의 의미를 퇴행시키는 처사가 되었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린 처사라고도 평가될 수 있다.
2012년 국사편찬위원회가 담당했던 검정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비롯한 총 8종의 교과서가 검정에 통과되었다. 이후 소위 ‘역사교과서 논란’이 발생했다. 한쪽에서는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과서가 소위 ‘좌편향’되었다고 비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교학사 교과서가 오류투성이의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고 비판한다.
교학사 교과서를 반대하는 측은 채택거부 투쟁까지 벌여 결국 학교 단위 채택률 0%를 이끌어 냈다. 부산 부성고등학교만이 유일하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 교학사 교과서 역시 다른 교과서들과 마찬가지로 지적된 오류와 문제들을 모두 다 수정해 최종 합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런 행태는 검정제의 취지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으로서 역사 교과서를 국가에서 발행하는 체제로 가자는 이유를 스스로 제공한 셈이 되었다. 즉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림으로써 검정제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해 버린 것이다.
국정제는 구시대적이고 검정제가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것 같지만 실상 역사학계와 교육 현장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쟁 환경의 현실을 보면 완전히 거꾸로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민주주의라는 것이 뭘까? 자신들과 다른 생각의 견해가 나왔다고 ‘이지매’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걸까?
국정제를 비판하기 전에 검정제 스스로가 과연 검정제의 취지를 살리고 있는지 역으로 누가 다양성을 해치고 있는지 조금만 들여다 보면 다른 진상이 존재함을 보게 된다. 어려운 문제다.
글/이종철 청년지식인포럼 story K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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