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충’ KIA 최영필, 거꾸로 돌아가려는 시계
삼국지 ‘황충’과 비유되는 노익장의 대명사
구속 높이고 체력보강..2014 시즌 뛰어넘을까
황충(黃忠)은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장수 이름이다.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 마초, 조운과 함께 ‘오호대장군’으로 불렸던 그는 익주, 한중 전투 등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조조가 자랑하는 장수 중 하나인 하후연을 일격에 죽이는 등 남다른 용맹을 뽐내기도 했다.
하지만 ‘삼국지’ 팬들에게 그가 깊은 인상을 남긴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황충은 다른 용맹한 장수들에 비해 나이가 많았다. 다른 장수들 같으면 진즉 은퇴를 하거나 뒤쪽에서 전술지휘를 할 나이였지만 황충은 젊은 장수들 못지않게 피가 끓었다.
이를 증명하듯 황충은 늘 선봉에서서 용맹하게 병장기를 휘둘렀다.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노익장(老益壯)’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KIA 타이거즈에도 황충 같은 존재가 있다. 최고령 투수 최영필(41)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영필은 KIA는 물론 KBO리그 전체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다. 야수로는 동갑내기 이병규(LG)와 진갑용(삼성)이 있지만 투수 중에서는 최영필보다 노장은 없다.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다. 나이가 들고 조금만 부진하면 곧바로 은퇴 압박을 받게 된다. 젊은 시절 같으면 단순한 슬럼프로 치부될 일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쇠퇴’라고 단정 짓는다. 마음이 급해지다 보니 여유 있게 기량을 펼치기도 어려워지고, 이를 악문 채 의지를 불태우려 하면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막는 ‘노욕’으로 비춰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최영필이 선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이를 무색케 할 만큼 팀에 확실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영필은 지난 시즌 KIA의 유일한 필승조였다. 여러 불리한 요소를 감수하면서 데려온 외국인 마무리투수 하이로 어센시오가 제몫을 하지 못한 가운데 토종 불펜투수들의 성적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운 좋게 건진 두산 출신 노장 김태영(36) 정도만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하지만 김태영 역시 평균자책점이 5.68에 달했다.
이대진 투수코치와 동갑내기인 최영필은 많은 나이로 인해 SK에서 방출됐지만 야구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KIA는 위기의 최영필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는 ‘신의 한수’가 됐다. 신고 선수로 입단해 6월부터 1군 무대에 합류한 최영필의 성적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최영필의 KIA 합류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1군에서 어느 정도 이닝만 소화해주면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기대치가 낮았다. 누구도 그가 필승맨으로 거듭날 거라고는 확신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영필은 보란 듯이 40경기 등판 4승 2패 14홀드, 평균자책점 3.19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팀 내 가장 좋은 성적으로 다른 팀 필승조 투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리그에 불어 닥친 타고투저 현상을 감안하면 더욱 빛나는 성적이라 할 만하다.
팀 내 젊은 불펜투수들이 기량저하와 분위기에 휩싸여 대량실점을 거듭할 때도 차분히 불을 꺼준 이가 바로 최영필이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최영필의 공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이 같은 활약의 원동력은 간절함이다. 그는 “언제까지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말은 이제 의미가 없다“며 “후배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로 자신의 절실함을 표현했다. 공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담아 던졌기에 쟁쟁한 젊은 타자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최영필은 젊은 투수들 못지않게 욕심이 많고 자신만만하다. 많은 나이에 거둔 지난 시즌 성적에 만족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15홀드, 2점대 평균자책점을 달성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구위는 좋았지만 체력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한 최영필은 현재 후배들 이상으로 강훈련을 소화 중이다. 체력만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지난해 이상의 성적을 올릴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삼국지’의 황충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어떤 타자를 맞아도 정면승부를 피해가지 않을 생각이다. 변화구보다는 직구로 윽박지를 생각이다. 최영필은 지난 시즌 직구 최고구속이 145Km까지 나왔으며 평균 구속은 130Km 후반 대였다. 올 시즌에는 평균 구속을 140Km 초반까지 끌어올린다는 각오다.
뿐만 아니라 볼 끝과 회전력을 높이기 위해 볼을 놓는 타점을 좀 더 앞으로 당겼다. 일단 힘으로 타자와 정면승부가 가능해야 변화구 역시 위력을 떨칠 수 있다는 게 최영필의 생각이다.
불혹을 넘긴 최영필이지만, 야구를 향한 '열정시계'만큼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2015 시즌에도 노장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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