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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꿈에 나타난 우물가 남근이 하는 말이‥.


입력 2015.03.28 10:39 수정 2015.03.28 11:26        최진연 문화유적전문기자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남근석>김포시 통진읍 가현리 미륵바위

지방마다 남근석을 다양하게 부르는 경우도 있다. 김포지역에서는 ‘미륵바위·돌미륵·미륵당’ 으로 부르기도 한다. 김포시 통진읍 가현4리에 위치한 ‘미륵당’은 인근에 사는 주민들조차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조용했던 농촌마을이 도시개발로 상전벽해가 됐기 때문이다.

기자는 2006년 5월, 미륵당을 답사한 후 6년 만에 다시 현장을 찾아 가보았으나 위치파악이 불가능 했다. 마을입구에서 구멍가계를 하는 이언례 할머니에게 미륵당에 관해 행방을 물었더니 “그동안 마을 앞 당집에 미륵을 모셨는데 도로가 확장되면서 뒤쪽 산기슭으로 옮겼다고 했다. 당집을 지을 형편도 못돼 지금까지 천막에 모시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할머니는 “옮기기 전만해도 미륵바위 아래 우물이 있어 자주 몸을 씻겨 드렸으며, 매년 사월초파일과 칠월칠석에 마을에 거주하는 여자들만 모여 제사를 드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미륵당을 찾아 가기도 힘들다"며, "지금은 할머니 몇 분이 치성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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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당을 찾아가는 길은 복잡했다. 일대가 공장 신축공사로 인해 포클레인 움직이는 소음이 요란했다. 어렵게 찾은 미륵당은 산비탈 축대위에 파란색 천막으로 둘러져 있는데, 마치 철거민 임시 거주지처럼 초라했다.

천막모퉁이에 문이 개방돼 있으며, 내부는 약 5평 남짓했다. 바다에는 비늘 장판이 깔려 있고 안쪽에 남근석을 세워놓았다. 남근높이는 약 1m에 둘레도 1m 남짓하다. 남근 앞에는 제단을 만들어 조화와 양초 2개, 그리고 물을 담는 큰 대야가 한쪽에 놓여 있었다. 미륵당은 한눈에 보아도 음산했다.

가현리 미륵당에는 재미난 얘기가 있다. 약 100년 전, 강화에서 이곳 가현리로 시집온 한 할머니가 어느 날 꿈에, 마을 앞 우물에서 돌이 올라왔는데, 자신을 잘 모시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산기슭에 초라하게 보이는 파란색 천막이 미륵당이다ⓒ최진연 기자

할머니는 꿈에서 깬 후 우물을 찾아가보니 실제로 낯선 돌이 있었다. 할머니는 마을어른들과 상의한 후 청년 네 명의 도움을 받아 조용한 곳으로 돌을 옮기고 당집을 지었었다. 그리고 미륵당으로 불렀다. 초파일과 칠석날에는 마을공동으로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렸다. 그 후 자식이 없는 가정에서는 이곳에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얻는 경사까지 겹쳤다.

김포지역은 드넓은 곡창지대다. 농경사회에서는 풍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었다.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남아선호가 절실했다. 자연히 민가에서는 남근석이 숭배대상이 됐다.

김포에는 여러 곳에 민간신앙의 유구가 있었으나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대곶면 간동마을, 통진읍 가현리에만 미륵당이 남았다. 이들 미륵당의 공통점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이며, 마을사람들의 꿈속에 등장해 남근의 존재를 알리고 치성을 드리게 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두 곳의 미륵당은 현재 김포에서 전해오는 전설 중 빠지지 않는 얘기들이다. 하지만 내력을 아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언젠가는 남근바위도 잊혀지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최진연 기자 (cnnphot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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