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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이정재 "천만 영화 욕심 없어"(인터뷰)


입력 2015.07.17 09:51 수정 2015.09.22 17:19        부수정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 역 맡아

"다양한 모습 보여준 캐릭터, 배우로서 욕심"

배우 이정재는 영화 '암살'(22일 개봉)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염석진 역을 맡았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48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 체중은 15kg이나 뺐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퀭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극도의 심적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런데도 이를 악 물고 버텼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았다는 이유에서다. 영화 '암살'(22일 개봉) 속 염석진을 연기한 배우 이정재 얘기다.

'암살'은 지난 2012년 '도둑들'로 1200만 관객을 불러모은 최동훈 감독의 신작으로 1930년대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 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 요원, 이들을 쫓는 청부살인업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정재는 극 중 두 얼굴의 임시정부 요원 염석진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 1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재는 전작 "'빅매치' 때는 근육질 몸을 만들었고, 이번 '암살'에선 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살을 뺐다"면서 "둘 다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음식물을 먹지 않고 살을 빼는 게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더라고요. 스트레스가 상당했습니다."

'암살'에서 이정재가 보여준 연기는 기대 이상이다. 극 초반 20대 독립군에서부터 중반 경무국 대장, 그리고 후반부 지독한 악인의 모습까지. "이정재가 이렇게 다채로운 얼굴을 가진 배우였다니!"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각 장면이 요구하는 얼굴을 보여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나중엔 살을 더 빼려고도 했지요. '인간' 이정재의 얼굴은 따로 있겠지만 '배우' 이정재의 얼굴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배우는 매 장면에 맡는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실 염석진은 웬만한 배우라도 소화하기 힘든 캐릭터다. 시간이 흐르면서 위협적이고 날카롭게 변하는 인물로, 고도의 집중력과 몰입도가 필요하다. 경력 20년을 자랑하는 이정재조차 "과연 할 수 있을까?"라며 망설였던 배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재는 "염석진 캐릭터를 맡은 건 행운"이라고 했다.

"처음엔 '이런 역할이 어떻게 나한테 왔지?'라고 궁금했습니다. 염석진이 지독한 악인이라 두려움도 느꼈고, 부담도 됐어요. 근데 어느 순간 연민이 생기더라고요. '그도 한국 사람이고, 당시 우리 얼굴 중 하나였을 것이다'고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한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라 배우로서 욕심이 났지요."

배우 이정재는 영화 '암살'(22일 개봉)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염석진 역을 맡았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의욕은 강했지만 누가 봐도 '나쁜 놈'이고 누구나 다 싫어하는 염석진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정재는 "나도 염석진 같은 사람이 싫은데, 염석진이 나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야 하는 게 괴로웠다"고 했다. 그러나 배우는 역시 배우다. 역할을 뼛속까지 파고 들어가면서 연구한 뒤 내린 결론은 '염석진은 내 몸에 난 큰 상처 같은 존재'라는 거다.

"염석진을 연기하면서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자문했습니다. 당시 시대와 환경이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쁜 사람이지만 측은했어요. 마냥 '나쁜 놈'이 아닌 복잡한 내면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했습니다."

어느 순간 염석진에게 깊이 빠져든 이정재는 시나리오에 없는 요소들을 상상하기도 했다고. 촬영을 마친 후 후유증이 생겼고, 여운이 밀려왔다. 캐릭터에서 헤어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배우들은 보통 일과 사생활을 철저하게 구분하는데, 이번엔 염석진에게 너무 몰입하다 보니 집에서 대사를 중얼거리기도 했어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도 그 사람의 행동에서 염석진을 찾으려고 했다니까요. 배우라는 직업이 참 어렵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웃음)."

최동훈 감독과는 두 번째 작업이다. 이정재는 "'도둑들' 이후 감독님과 친해졌다. '신세계'와 '관상' 속 내 모습을 보고 감독님이 날 믿어주셨다. 감독님은 일에 대한 애착과 욕망으로 똘똘 뭉친 분"이라고 했다.

극 중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역의 전지현과는 '시월애'(2000)와 '도둑들'에 이어 세 번째 만남이다. 이정재에게 전지현은 친동생 같은 존재란다.

"자주는 못 보지만 오래 봤다는 느낌이 들어요. 말을 많이 안 해도 통하는 사이라고들 하죠? 전지현 씨는 일부러 멋을 내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멋이 풍기는 배우예요. 연기를 가볍게 하는데, 그 가벼움 속에 폭발적인 파괴력이 담겨 있죠."

'암살'은 상반기 부진했던 국내 영화계를 되살린 희망이자 올여름 최고 기대작으로 꼽힌다. 순 제작비만 180억원이 들었고,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같은 할리우드 대작과 '베테랑', '협녀, 칼의 기억' 등 국내 영화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영화계에선 '암살'이 '천만 영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흥행에 대한 부담이 클 듯하다.

배우 이정재는 영화 '암살'(22일 개봉)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염석진 역을 맡았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천만 관객을 기대하느냐고 묻자 이정재는 "그렇지 않다. 천만 돌파를 기대하고 영화를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흥행은 개봉 시기, 사건·사고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지는 듯해요. 사실 돈을 벌겠다고 영화를 찍는 영화인들은 없을 거예요. 다만 부담은 있죠. 일단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서 투자자, 제작자 등을 고려해야 하니까요."

이정재는 '암살'처럼 애국심을 고취 시키는 대작, 특히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그간 없었다고 강조했다.

"시대상을 구현하는 데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요. 한국에서 촬영할 수 있는 장소도 없고요. 다들 예산을 짜다가 포기하죠. 그래서 100억짜리 작품을 성공 시킨 감독의 영화에만 투자가 들어오는 셈이지요."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흥행에 참패한다는 속설이 있다. 이정재는 "손익 분기점만은 넘기고 싶다"며 "투자를 해주신 용기 있는 분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고 했다.

'하녀'(2010)를 시작으로 '도둑들'(2012) '신세계'(2012) '관상'(2013) '빅매치'(2014), 그리고 '암살'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그의 소신이 궁금해졌다.

"사람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아요. 퍼즐로 비유하자면 신인 때는 10개 조각만 맞추면 썩 괜찮았는데, 10년이 지나고 30개 조각을 맞춰야 했어요. 이후에는 더 많은 조각이 필요하고요. 예전에는 연기를 몰라서 일을 못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연기가 보이는 것 같아요. 마지막 한 조각까지 꼼꼼하게 맞춘 완성된 그림을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합니다."

영화 개봉 후 계획을 묻자 이번 주에 차기작 촬영에 들어간단다. 한국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되는 중국 영화 '역전의 날'이 그를 기다린다. '심리 액션 영화'라는 독특한 장르다. 이정재는 형사 역을 맡았다.

또 몸을 쓰는 역이냐고 걱정스럽게 묻자 그는 "뭐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번 작품보단 낫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모든 걸 초월한 듯한 대답이 이어졌다. "근데 감독님이 워낙 원하는 게 많아서(웃음)."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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