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유재석은 정말 사과 했어야 했나
<김헌식의 문화 꼬기>재미와 흥미를 위한 솔루션 프로, 근본 성찰 필요
지난 18일 SBS TV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에서 방송된 내용에 관해 25일 진행자인 유재석과 김구라가 사과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과보다는 이 프로그램 제작 자체의 문제가 컸다. 물론 제작진은 지난 19일 SBS 홈페이지를 통해 “아빠와 딸 각각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하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노력이 세심히 전달되지 못해 아쉽다.
시청자들에게 불편하게 한 점과 좋은 의도로 녹화에 함께 한 가족들에게도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제작진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전혀 담겨져 있지 않은 사과였다. 의도 자체에 이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이 언제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부정적 결과였다.
우선 18일 방송된 내용은 아빠의 스킨십이 과도해서 문제라는 여학생의 사연이었다. 방송후 많은 비판이 이어졌고, 이에 진행자였던 두 사람이 사과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두 사람에 대한 비판도 사실 갈라졌다. 예컨대, 아빠의 정당한 애정 표현을 마치 성추행과 같이 몰아갔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에 유재석이 “나는 부모님과 스킨십을 활발하게 나눈 세대가 아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는 발언도 문제를 삼았다. 딸을 옹호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아빠를 비난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유재석이 제대로된 역할을 못했다고 했다. 즉 아빠의 행동에 대한 명확한 지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빠의 스킨십을 비판하는 주장의 대부분은 본인의 의사와 반하는 애정 표시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사랑이라는 명분도 합리화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객관적인 포인트만을 본다면 지나친 스킨십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었다. 언론매체를 통해 가정 내 성폭력 문제가 빈번하게 오르내리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강제로 스킨십을 시도하는 것은 성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친딸을 추행하는 장면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강제 스킨십에 초점을 맞춘 텍스트들에 대한 놀라운 과열 양상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사연의 핵심은 아버지의 지나친 스킨십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였다. 그러나 방송은 편집 제작을 거치면서 스킨십 자체에 초점이 맞춰졌다. 강제 입뽀뽀, 자는 딸 옆에 누워 안기, 엉덩이 허벅지 만지기, 강제 껴안기, 뽀뽀를 위한 용돈주기 등이 등장했다. 이에 딸은 스킨십이 싫어 아빠를 피해 다니는가 하면, 아빠의 강제 뽀뽀 때문에 딸이 눈물 흘리는 장면 등이 부각되었다. 이런 점들을 보면 아빠는 상당히 문제 있는 인간이 된다.
애초에 아빠의 스킨십은 상당히 사회적으로도 민감한 소재였고, 내용은 이보다 더 민감한 내용을 담아냈다. 아빠와 딸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나아가 나이 많은 남성과 나이가 적은 10대 딸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했다. 인터넷 담론은 이것이 더욱 확장되었는데, 딸이라고 해도 본인의사에 반하는 스킨십은 범죄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맥락이었고, 여기에는 그 가정의 아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무지몽매(?)한 아빠들을 계도하려는 선의지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는 맞는 말이지만 아빠와 딸의 관계보다는 사회적 징치에 좀 더 경도되었다. 더구나 유재석이 좌우할 수 있는 여지는 처음부터 많이 없었다. 소재나 내용의 흐름, 그리고 영상 구성과 발언의 배치는 제작진이 관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해당 방송 출연자였던 여학생이 조작방송이라고 말한 배경이기도 하다.
SNS에 “아빠도 스킨십 하는 게 지겹다 어렵다 어색하다 너무 많이 한다는 말을 촬영 내내 달고 다니셨을 만큼 방송이라 만들어진 장면도 많습니다”라고 한 바 있다. 출연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이미지로 방송에 나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언제나 불일치의 충격을 받게 된다. 따라서 제작진의 잘못이 명확하다. 이런 맥락에서 출연진들의 발언들은 그 틀안에서 이뤄지는 제한된 기능만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비슷한 사태는 이런 유형의 프로그램에서는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솔루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고민이나 문제가 있는 사연을 받아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은 너무나 많은데, 이 프로그램은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를 가정 내 청소년과 부모의 문제로 좁혔을 뿐이다. SBS '아빠를 부탁해'에 대한 솔루션 버전인 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솔루션 프로그램은 극적인 흥미와 재미를 위해 사안을 극단화 하거나 자극적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독특하거나 별난 주인공들을 등장 시키거나 이들의 행동적 특징을 과장하고는 한다.
특히 시사나 교양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해진다. 이에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규정되어 버리고 때론 희화화로 상처를 받게 된다. 정황상 아빠의 스킨십도 이미 논란을 예상하고 제작된 것이다. 그 의도는 많이 충족된 셈이 되었고 제작진은 뒤로 빠진 채 진행자들이 앞에 나서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출연 가족이다. 고민을 해결하려 했다가 오히려 고통의 상처를 얻어간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는 해당 프로그램 분량이나 유재석 자체의 사과로 머물 일이 아니라 이런 프로그램 포맷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겉으로는 매우 아름다운 가치를 표방하지만 언제든지 실제와 유리되어 가상의 관념적 선의지를 만족 시키는 희생의 제물을 찾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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