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지르고 피켓 들고 퇴장하고...' 시정연설의 흑역사
노무현 정부때부터 대통령 시정연설 '난장판'
예우 받고프면 예우 다해야 국회 권위도 세워져
‘피켓 시위, 집단 퇴장, 장외 투쟁, 고성과 삿대질...’
광화문 광장이나 외부 시위 현장의 풍경이 아니다. 정권을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위해 방문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진 상황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27일, 본회의장에선 여야 의원들 간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야당이 정부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반대하며 ‘민생 우선’, ‘국정교과서 반대’ 등이 적힌 피켓을 의원석 모니터에 붙이고 침묵 시위에 돌입하자, 여당 의원들이 “그럴 거면 차라리 나가라”며 대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날 시정연설에 앞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국사교과서와 피켓을 들고 입장, 시위를 시작하자 정의화 국회의장은 “야당 의원들의 충청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국회의 품격을 생각해달라. 대통령 연설 할 때 이렇게 하는 것은 행정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여러차례 시위 철회를 요청했다. 아울러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정 의장과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를 만나 공식적으로 시위 철회를 주장했다.
국회의장의 요구에도 야당이 움직이지 않자 여당 의석에선 “의장말 좀 들으라”, “그럴거면 그냥 나가서 하라”, “국회 망신 시키지 말고 그것(피켓) 빨리 치우라”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이 원내대표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원내대표 어디갔나. 예의좀 지키라”며 고성을 질렀고, 이에 야당 여성 의원이 “예의라니, 국민한테부터 예의좀 지키시라”고 맞서면서 의원들 간 거센 삿대질도 오갔다.
국회가 이처럼 ‘품격’을 잃은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선보인 2013년 11월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들 전원이 마스크를 쓰고 입장, 정부의 정당해산심판청구에 항의하는 시위를 선보였다. 당시 진보당 측은 “독재정부가 자유로운 정당 활동까지 죽이고 진보 세력의 입을 막으려 한다”며 연설 내내 의도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했다. 민주당의 경우, 시정연설에는 참석하되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고 퇴장할 때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채 대통령에 항의했다.
특히 시정연설 후 국회 본청 앞에 주차된 차량 문제로 강기정 민주당 의원과 청와대 경호지원 요원의 충돌 사태가 발생, 청와대와 야당 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기도 했다. 실제 시정연설 다음날 진행된 대정부질의에서 당시 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이 강 의원의 폭력 사태를 비난, 이에 반발한 민주당 의원 전원이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9년의 경우, 정운찬 국무총리가 시정연설을 대독하기 전 일부 야당 의원들이 세종시 문제와 미디어법 처리에 반발하며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 김형오 국회의장이 이를 무시하고 곧바로 연설을 진행시켰다. 이에 류근찬 선진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일부 의원이 연단으로 뛰어나와 정 총리를 잡아채는 등 거세게 항의하면서 연설이 지연됐다.
이어 한 야당 의원이 또다시 연단으로 뛰쳐나와 “총리는 당장 사퇴하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이를 제지하는 여당 의원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소란 후에도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등 5명이 정 총리의 연설 내내 “총리는 약속을 지키라”는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였고, 선진당 의원들은 아예 집단으로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야당 의원들의 퇴장 사태는 이보다 앞선 2008년에도 벌어졌다. 당시 이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한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민노당 의원들은 정부를 비판하는 경고성 플래카드를 들어 보인 뒤 집단으로 퇴장, 국회 본회의장 정문 앞에서 장외투쟁을 이어갔다. 민주당 의원들 시정연설을 마친 대통령이 악수를 청한 앞줄의 몇 의원을 제외하고는 기립도 박수도 없이 냉랭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아울러 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2003년 역시 일부 야당의원들은 권위적 태도로 일관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입장하자, 통합신당 의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영의 뜻을 표한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팔짱을 끼거나 굳은 표정으로 기립하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의 절반 가량도 기립하지 않고 냉랭한 얼굴로 외면하면서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의 경우 추미애 의원만 노 전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치고 본회의장을 떠날 때까지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에 당시 “국회의 대통령 무시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한편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시정연설에 앞서 ‘입법부·사법부·행정부 간 존중’을 강조하며 야당의 이같은 행동을 꼬집었다. 정 의장은 “내가 국회의장을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은 품격 있고 국민께 인정받고 신뢰받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며 “특히 과거에 국회가 보였던 여러가지 후진적 행태들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새롭게 출발하는 뜻으로 바꾸는 것이 내 열망”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어 “지금 야당 의원들이 의장의 간곡한 요청을 듣지 않음으로써 의장으로서는 마음 불편하고 섭하기도 하지만, 여러분의 의사를 의장이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오늘 이것으로써 앞으로는 국회의 여러 규정을 잘 지키고 품격 있는 국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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