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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클래식 냄비현상? 조성진 열풍의 거품 방울들


입력 2015.11.08 09:00 수정 2015.11.08 09:14        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의 문화 꼬기>재주 넘는 곰보다 판 깔아주기 중요

조성진 열풍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단순히 언론 보도가 뜨거운데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는 조성진의 클래식 앨범을 사려고 줄을 선 모습들이었다. 이렇게 클래식 앨범을 사려고 줄을 서는 사례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일반 케이팝 앨범도 없다. 마치 아이폰 신형 모델을 사려는 행렬같아 보인다. 온라인 구매 중심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수는 있다. 어쨌든 앨범을 파는 곳을 제한했기 때문에 줄을 설 수 밖에 없었던 점은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

예전에 케이팝 기획사들이 일부러 10대들이 앨범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서는 모습을 인기 가늠의 척도로, 홍보효과를 위해 사용했던 것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조성진 앨범의 전제조건은 '클래식 앨범임에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음원 차트에서 아이돌 가수들의 음원을 이긴 것도 조성진 열풍을 대단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음원차트는 순간적인 순위권 변동이 기본적인 특징이라는 점은 요지 부동이다. 그것에도 역시 '클래식 앨범임에도'라는 모든 곳에서 결핍을 우월하게 만드는 단서 조항같은 단어가 붙는다. 조성진의 신화는 이제 상품의 단계로 간다.

조성진 열풍이 있다면, 그 원인은 세계최고의 음악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대회가 어떤 대회인지 알지 못한다. 평소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다. 최고의 대회라고하니 가슴이 뭉클하고 대단한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는 감정이 앨범 구매를 위한 줄서기에 나서게 만들었다. 1등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음악에 관심을 갖고, 그 음악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못한 듯하다. 조성진이 세계 최고 대회의 우승이라는 그 타이틀 때문에 소장 가치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해 비로소 앨범을 구매하는 행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악의적인 점수를 준 심사위원의 행위는 더욱 그 가치를 올려주었다. 물론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 최고점과 최하위점수는 점수 산정에서 제외하는 심사 문화를 잊은 채 말이다.

국내에 클래식 음악을 잘하는 이들은 너무나 많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클래식 뮤지션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음악이 조성진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우리는 잘 알 수가 없다. 없다는 것은 그 음악들 역할이 부족한 것이라는 면보다 관심이 그렇게 없다는 것을 말한다. 엘리트 체육은 생활 스포츠와 달리 국제 경기 대회의 결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만약,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못하면 그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 평소에 체육에 관심이 없다가도 이런 우승소식만 전해지면 온통 관심이 그곳에 모아진다. 곧 그런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그 선수는 물론 해당 경기종목까지 잊혀진다.

엘리트 음악은 일반 생활 속 음악이 아니라 국제 콩쿠르 대회의 결과에 따라 그 생명이 좌우된다. 만약 이런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면 음악적 능력은 물론 자질까지도 의심을 받는다.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그 뮤지션은 물론 해당 분야도 잊혀지기 마련이다. 대중성에 기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권위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아니 대중성이 없는 클래식 음악이 살아남는 생존법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주 넘는 곰이 아니라 그 곰들이 재주를 넘게 판을 깔아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조성진 앨범의 수익은 모두 해외로 갈 뿐이다. 이런 대회우승이 화제가 되는 현실에 영향을 받는 음악 유학생들도 유럽과 미국으로 나가며 수많은 돈을 쓴다. 아까운 돈들이다.

정말 바람직한 방법은 우리의 국악이 최고의 권위를 갖고 세계인들이 참여를 하려는 국제 대회가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우리의 케이팝을 익히려는 사람들이 쇄도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좋다. 어차피 해외 대회의 권위만 높아지면 이를 통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그들이다.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니 실속이 있는 것은 우리 땅 그 자체에서 우리 힘으로 공연과 음악의 마당을 깔아 놓는 것이다. 

흔히 작은 나라 대한민국 사람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격의 평가를 더욱 내리면서 앨범 구매까지 하고 있는 듯 싶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뭐라고 할 수 있는 재능과 능력을 갖고 있고 여기에 근성도 있다. 새삼 그런 논리에 휘말려 주머니를 털 필요는 없겠다. 우리가 주인공인 음악 축제, 세계인들의 참여가 열렬히 열망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클래식만이 아니라 케이 팝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우리 일상에서 음악이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증거이다. 즉, 어떤 음악이라도 국적에 관계없이 선호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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