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직권상정' 거부에 박 대통령 긴급권 발동?
이인제 언급 이어 김무성 "모든 것 법에 근거, 검토해 보겠다"
새누리당이 야당의 몽니로 꽉 막힌 국회 입법을 위해 급기야 '긴급권'까지 꺼내들며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압박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긴급권을 발동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전날 예정됐던 본회의·상임위의 파행을 야당 탓으로 돌리는 성토의 장이 된 16일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는 지난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실시를 위해 마지막으로 발동됐던 '긴급권'이 거론됐다.
이인제 최고위원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대통령의 긴급권 밖에 없다"며 '긴급권'을 언급한 것.
'긴급권'은 헌법 76·77조에 규정된 것으로 '긴급명령'과 '긴급재정경제명령‧처분', '계엄선포'가 있다.
이날 이 최고위원이 언급한 '긴급권'은 '긴급재정경제명령·처분'으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 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
이는 사실상의 대통령 '직권상정'인 셈이다. 다만 처분·발동 후 국회에 보고해 추인을 받아야하고 추인받지 못하면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과는 다르다.
이 최고위원은 특히 정 의장을 콕 집어 "국회의장은 법만 이야기하는데 법 위에 있는 헌법을 왜 바라보지 않느냐"며 "의회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는 국회 선진화법은 헌법에 위배되는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선진화법을 들어 '직권상정'을 거부하는 정 의장의 논리는 틀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 의장은 완고했다. 정 의장은 이날 11시30분 의장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선거구획정을 전제로 하는 '선거법'을 제외하고는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의장은 "(경제법안의 직권상정을) 초법적 발상으로 행하면 오히려 나라에 혼란을 가져오고 경제를 나쁘게 할 수 있는 반작용이 있다"면서 "상당히 고심하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 의장이 '직권상정'을 염두에 두지 않음을 밝히자 이번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움직였다. 김 대표는 긴급재정경제명령을 검토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든 것이 다 법에 근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 해석의 차이일 따름"이라며 "(긴급권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갑자기 등장한 긴급권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전날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 의장을 찾아 '직권상정'을 촉구한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여당에서 '마중물'처럼 긴급권이 언급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직권상정이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군불 지피기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긴급 재정경제명령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다시 한 번 말한다"며 '긴급권'을 거듭 부정했다. 하지만 여당은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한다(정갑윤 부의장)", "경제난이 가중돼서 만약 경제위기가 눈앞에 직면한다면 가능할 것(이장우 대변인)" 등 긴급권을 암시하는 발언이 계속 나왔다.
특히 이날 오후 여당 원내지도부가 의원총회를 통해 결의한 '쟁점법안 직권상정 촉구안'을 정 의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국회의장실을 찾았으나 정 의장이 7분여 만에 고성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등 정 의장과 여당의 감정의 골도 깊어지는 점도 긴급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자리에 배석했던 문정림 원내대변인은 "정 의장께서 여러모로 답답한 마음을 표시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정 의장은 '건의문은 받았지만 직권상정 요건이 안 되고, 별도로 약속을 잡고 온 것도 아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전해졌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당은 정 의장이 직권상정을 끝까지 거부한다면 노동개혁 입법, 경제활성화법안 등의 연내 처리 방법이 없는데 결국 연내처리를 강조했던 박 대통령이 긴급권을 포함한 다른 차선책을 내놓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면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긴급권에 대해 당내 논의가 있냐는 질문에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조 원내수석부대표는 "그것과(긴급권) 관련된 발언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결국 정 의장이 직권상정을 거부할 경우의 계획에 대해서는 "노력하고 있다. 좀 더 지켜보자"며 뾰족한 수가 없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영우 수석대변인도 "김무성 대표의 '긴급권' 언급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표현"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당내에서도 긴급권을 검토하고 있지도 않고, 당이 검토할 문제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