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vs 알파고, 불공정 덕에 도드라진 인간의 위대함
이세돌9단 연패, 1승 가능성도 희박
1200개 뇌 가진 알파고에 선전 평가
인류 대표로 나선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 번째 대국이 12일 열린다.
지난 두 차례의 대국 결과는 바둑이라는 두뇌스포츠를 만들어 낸 인류에게 충격과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간이 인공지능에 지배 받는 세계의 도래가 결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닌 실제 상황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
알파고가 이미 한 차례 바둑 유럽 챔피언을 꺾었지만 세계 최고의 기사인 이세돌 9단과의 맞대결만큼은 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인간만이 가질 수 있고, 경험으로 축적할 수 있고, 이를 실전에 응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는 현존 프로기사 가운데 최고라 할 수 있는 이세돌 9단 앞에서는 천하의 ‘기계’ 알파고도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오류를 노출할 것으로 분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두 차례 대국 모두를 계가 없이 불계승으로 마무리 지었다. 지난 10일 알파고와의 두 번째 대국에서 알파고의 믿기지 않는 수싸움 능력과 끝내기 능력에 속수무책 당하며 대국 중에도 얼굴이 붉게 물들고 헛웃음까지 지어 보였던 이세돌 9단은 211수 만에 알파고에게 돌을 던졌다.
이날 대국을 TV를 통해 생중계했던 김성룡 9단은 “알파고가 인간을 상대로 이길 수 있나 했는데 오늘 바둑을 보니 반대인 것 같다”며 “인간이 알파고에게 한판을 이기는 게 대성공인 걸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전개되자 하나의 두뇌를 가진 인간과 무려 1200개에 달하는 CPU를 장착한 인공지능 슈퍼컴퓨터의 맞대결이 ‘과연 공정한 게임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9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세돌 필패론'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던 법부법인 한얼의 전석진 변호사는 이번 대국이 '불공정한 게임'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광케이블로 인터넷에 연결돼 컴퓨터 자원을 무한정 사용하는 알파고가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훈수꾼'들을 두고 바둑을 두고 있어 일대일 대국이라는 바둑의 대원칙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구글이 알파고가 일종의 훈수꾼인 브루트 포스(Brute force) 알고리즘을 절대 쓰지 않는다고 천명했지만 브루트 포스를 쓰는 다른 프로그램이 알파고를 돕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반칙’이라고 주장했다.
이세돌 9단의 5전 전패를 예상하고 있는 조환규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역시 "돌을 두는 횟수가 많아지면 컴퓨터가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다"며 "인공지능은 실수를 해도 돌을 두면서 빠르고 멀리 내다보는 계산에 힘입어 만회할 기회를 계속 만든다. 컴퓨터를 엄청나게 돌려 계산한 후 이겼다고 하는 것은 좀 불공정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국이 벌어지기 전까지 조명을 받지 못했던 이와 같은 주장은 현재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식의 여론의 추이가 다소 간사해 보이기는 하나 분명 허황되거나 억지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번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에 대해 눈길을 끄는 코멘트가 있다.
‘SBSCNBC’의 프로그램 '백브리핑 시시각각'의 이형진 앵커는 프로그램 말미 클로징 멘트에서 이세돌 9단의 첫 번째 대국 패배를 언급하며 “일각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첫발을 내디뎠다는 평가마저 내놨다. 구글의 알파고,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 CPU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CPU 1200개를 돌리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했다”면서 “다시 말해, 알파고는 이세돌과 대결하면서, 혹은 이세돌과 대결을 준비하면서, 필요 이상의 혹은 상상보다 더 많은 공해물질을 배출하고 있었던 것”이라 지적했다.
이어 “그에 반해 인간 이세돌은 하루 세끼만 먹고 CPU 1200개를 돌려야 하는 기계괴물과 거의 비슷한, 혹은 더 나은 능력치를 보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멘트를 마쳤다.
알파고가 무려 1200개 이상의 CPU를 장착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무수한 훈수꾼을 옆에 앉혀 둔 채 바둑을 두고도 단 하나의 두뇌만을 지닌 이세돌 9단에게 첫 대국에서 무려 186수를, 두 번째 대국에서는 첫 대국보다 훨씬 많은 211개의 돌을 두게 했다는 점에서 이번 대국의 결과에 관계없이 인간의 위대함이 증명됐다는 논리다.
이번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은 출발점부터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이 지배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이번 대국이 거듭되면서 이와 같은 불공정한 게임의 법칙이 드러났고, 그로 인해 인간의 두뇌와 인간의 존재 자체의 위대함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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