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총선 뜨거운 현장을 가다-부산 사하을>
조경태 독주 막기 위한 야권 후보 5인 ‘고군분투’
20대 총선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지만, 표심은 여전히 부유(浮遊)하고 있다. 선거판을 주도할 이슈의 부재,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 상승으로 부동층만 30%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역대 어느 선거보다 ‘격전지’가 늘어나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그 누구도 승패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데일리안의 정치부 기자들이 20대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 지역을 직접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집권당도 아니었는데 그 정도 하는 사람은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니야. 내는 우리 경태가 (시장에 유세) 오면 TV 보다가도 눈이 번쩍 뜨여서 마중 나가제.”
여당의 대표적인 텃밭 ‘낙동강 벨트’에서도 12년간 꿋꿋이 야성을 지켜온 부산 사하을. ‘보수’ 색채가 짙은 부산이지만, 사하을 민심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부산 지역 최다 득표율(58.19%)로 현역인 조경태 의원에게 3선을 선물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조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꾸면서 ‘일여다야’ 구도가 됐다. 4선에 도전장을 낸 ‘우리 경태’의 독주를 5명의 ‘우리 아들’ 후보가 막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사하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다대로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대부분의 후보 선거사무소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 총선의 가장 관심지로 꼽히는 사하을의 민심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5일 뜨거운 태양 만큼 후보들을 향한 민심도 열기가 느껴졌다.
당적 바꿔도 ‘우리 경태’
듣던 대로였다. 가는 곳마다 ‘우리 경태’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았다. 조 후보가 워낙 지역구 관리를 잘하기로 유명해 인기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연예인’ 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조 후보는 사하을에서 ‘우리 경태’로 통한다. 주민의 대부분을 ‘어무이’나 ‘형’ ‘누이’로 부르며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는 곳마다 조 후보에 대해 물으면 “일 잘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하을 주민들이 꼽은 그의 업적은 ‘지하철’이다.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었던 부산지하철 1호선 다대구간 연장을 이뤄냈다. 사하을 발전 시계는 느리게 돌아간다. 지리적 요건 상 교통은 물론 생활 여건까지 타 지역구에 비해 발전이 더뎌 주민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촌’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하철 연장 하나만으로도 조 후보가 ‘일꾼’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 이유다.
주민들은 조 후보의 당적 변경을 ‘잘했다’고 칭찬한다. 야당 소속으로 지역 발전을 이뤄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집권 여당 4선 의원이 돼 더 많은 일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신평골목시장에서 만난 설모(여·79세) 씨는 이러한 지역 분위기를 귀띔했다. 지역민들에게 ‘조경태’라는 석자는 ‘미래’라고 했다.
“조경태라고 알지? 우리 이제껏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많이 찍어줬는데 일을 하나도 안했어. 근데 조경태가 3선했다 아이요. 생전 한나라당 많이 찍어줘도 요만도 일 안했는데, 우리 경태는 일 무지하게 했거든”이라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설 씨는 또 “지하철 잘 되게 해놨고, 경태가 일을 마이해요. 우리 입장에서는 당이 바뀌어도 상관없지. 일 잘하는 사람이 밥 맥여준다 아이가. 그랑께 우리는 조경태가 일을 잘하니까 새누리당 갔어도 걱정 없어”라고 했다.
신평역 앞에서 만난 사회복지사 김모(남·77) 씨는 “지하철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8000억 원해서 금년에 다 되는 거 아입니까. 송도에 터널도 뚫었지, 여당 텃밭에서 3선을 한 사람인데 그 분이 여당으로 왔단 말입니다. 여기 발전 더 시킬 거라는 건 다들 믿고 있어”라고 기대했다.
김 씨는 조 후보에 대한 ‘응원’도 편히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여기 여당 지역이니까 4년 전만해도 사람들이 응원하러 나올 수가 없어. 주위사람 나와서 박수쳐줄라 해도 보는 눈이 있는 거야. 근데 어제는 다대포에서 (유세) 했는데 아지매들 춤추고 난리도 아니었어. 이제 편해 좋아”라고 말했다.
이날 조 후보가 몸이 아파 장림시장 유세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유세 차량 주변에 70~80명이 모여들었다. 한 여성은 선거운동원 앞에 서서 ‘파도타기’를 유도했고, 일부 노인들은 조 후보의 선거송에 맞춰 춤을 췄다. 찬조 연설 마디마다 “조경태! 조경태!”를 외치며 환호했다. 그간 조 후보에 대한 응원의 응어리를 한 번에 풀어내는 듯했다. 지지트럭이 정차하며 유세차를 가리자 “와이라노” “비키라” 등으로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유세를 지켜보던 80대 남성은 “(4년 전에는 조 후보를 지지한다는 게) 굉장히 조심스럽지. 정말 조심스러웠어. ‘내가 조경태 찍었다’ 이 소리도 못해. 이제는 마음이 편하다. 함 두고 보세요. 이번에는 득표율 80% 나올 것 같으니까”라고 지역 분위기를 설명했다. 토스트가게를 운영하는 40대 여성도 “조 후보가 솔선수범하고, 말한 거 다 지키고 서울에만 있지 않고 여기에 자주 내려와서 주민 만나는 게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장림시장 근처에서 돼지국밥집을 운영하는 40대 여성은 “처음 언론에서 나올 때만해도 사나운 사람으로 생각했다. 이미지가 아무래도 차가우니까. 근데 동네사람으로 계속 봐우고 일도 잘하고 주민들한테도 잘해서 친근감이 느껴진다”며 “조 후보는 ‘낮출 줄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일 잘하는 사람 처음봤다. 이번에도 조 후보가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조 후보는 차량유세 등 공식 일정 외에는 ‘1대 1’ 유세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출근길 인사로 시작해 퇴근 인사는 꼭 챙기며 스킨십에 애쓰고 있다. 조 후보 측 관계자는 “조 후보는 1대 1 스킨십 위주로 한다. 주민들이 권위적인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다보니까 몰려다니는 걸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다”며 “골목마다 한 명씩 찾아가서 인사하고 있다. 우린 늘 하던대로 겸손하게 움직이겠다”고 설명했다.
‘배신자’ 비난 여론도…빈틈 노리는 정치 신인 5인
“배신이지 배신. 조경태가 새누리당 들어오면 잘한 거가! 아무리 조경태라도 4선이 그렇게 좋은가베!”
장림시장에서 조 후보의 유세 차량 건너편에는 ‘새누리 탈당 진영 배신자. 새누리 입당 조 의원 충신?’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한 남성이 큰 소리로 반발했다. 자신을 조 후보의 과거 지지자라고 밝힌 정모(64) 씨는 “왜 탈당을 했는지 정확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세 번이나 찍어준 주민들을 배반하는 게 어딨노! 진영은 배신자로 찍어놓고 조경태는 충신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고 비난했다.
정 씨는 “우리가 이제껏 당보고 찍어준 것도 아닌데 당 옮길 때 주민들한테 한 마디도 안했다. 4선이 뭐라고 4선이 그렇게 좋은가. 무소속으로 나왔어도 됐을 양반인데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정 씨가 유세 차량 앞에서 피켓을 높이 들고 지속적으로 항의하자 일부 주민들이 “지금까지 지역 발전을 위해 한 걸 생각하라” “여태 일 잘한 사람한테 와이러는데”라며 조 후보를 옹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숙박업에 종사하는 김모(여성·53) 씨도 “조경태가 당 옮긴 거는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찍어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처럼 조 후보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사하을에 혼재한다. 조 후보를 당과 상관없이 지지했음에도 당적을 변경한 것은 ‘배신’이라는 지적이다. ‘정치 신인’ 5명의 후보들은 이 같은 프레임을 선거 전략으로 내세웠다.
이는 현수막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아들·딸이 떠나지 않는 사하’(더불어민주당 오창석 후보) ‘사하적토마 3 배관구는 한다면 한다!’(국민의당 배관구 후보) ‘새누리당 해고! 정의당 채용!!’(정의당 유홍 후보)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만, 진정한 정치인은 다음세대를 걱정합니다’(무소속 안중영 후보) ‘박근혜 정권을 심판해야 국민이 삽니다’(무소속 최지웅 후보) 등 정부 여당과 조 후보를 에둘러 비판했다.
오 후보 측 관계자는 “지역에서 들어보면 (조 후보가) 당적을 옮긴 것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의견도 일부 있다. 다만 우리는 네거티브를 지양하고 보이는 그대로 표심을 잡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만난 오 후보도 바닥 민심부터 훑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상대 후보에 대해 비판하는 말들 대신 “열심히 하겠다” “도와 달라”며 친근감 있게 다가갔다. 평일이라 한적한데도 아파트 단지 곳곳을 돌며 명함을 건네고 안부를 물었다. 오 후보는 “평일에는 유세하기가 힘들다. 보통 부녀회나 반상회 이런 데 가면 좋은데 매일 열리는 게 아니니까 열심히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앳된 얼굴의 그가 ‘국회의원 후보’라고 소개하자 “이분이 오창석?” “디게 젊네예” 등 놀라는 주민들도 보였다. 노인정에서 만난 노인 5명은 ‘손자뻘’인 오 후보가 들어서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고 아들. 잘생겼네” “대승하이소” “정치인은 자고로 했던 말 지켜야 하고 잘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배 후보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사하구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배 후보의 나이는 26세였으며, 총선 출마를 위해 기초의원직을 던지고,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그는 구청사 신평 이전 등을 내걸고 표심 잡기에 힘쓰고 있다. 유 후보는 사하을에서 은행원으로 20년 가까이 근무하고 시당 교육위원장 등을 역임한 인재로 평가받는다. 안 후보는 전 승학신용협동조합 전무를 역임했으며, 최 후보는 전 광우병위험미국산소고기반대 부산시국회의 대변인 등의 경력을 활용해 득표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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