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시청률 보증수표' 공식 깨진 안방극장
드라마 흥행 코드, 막장 아닌 명작
사전제작-대본-연기력, 성공 키워드
KBS가 모처럼 드라마들의 성공으로 봄바람을 만끽하고 있다. 특히 월화수목 주간극을 비롯해 주말극까지 시청률을 싹쓸이 하고 있는 가운데 지상파 단골 소재 ‘막장’ 하나 없이 거둔 성적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지상파와 tvN 간의 드라마와 시청률 비교 관련 보도를 보면, 대개의 경우 막장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지상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 tvN은 작품성과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을 높이 평가받으며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상파 드라마 사이에서 달라진 풍토가 이목을 끌고 있다. ‘막장=시청률’이라는 공식을 보기 좋게 깨며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세례를 받고 있는 것. 특히 막장에 불륜극까지 선보이며 반전을 꾀했지만 연이은 실패로 굴욕적인 시청률을 이어가던 KBS는 자극적인 소재를 뺀 그야말로 작품성과 연기파 배우들로만 앞세운 작품들로 시청률 반전사를 이끌어내고 있다.
주말극이야 KBS의 대표적인 효자라고는 하지만, 가족극을 앞세우면서 자극적인 소재로 젊은층들까지 이끌어 모으는 데는 실패한 분위기였다. ‘주말드라마는 중장년층이 보는 드라마’라는 인식이 컸던 이유다.
하지만 ‘아이가 다섯’의 경우, 안재욱과 소유진 등 출연진들의 열연도 열연이지만 무엇보다 막장 코드가 아닌 진정한 가족들 간의 이야기만으로 30%대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캐릭터간의 케미 속 밝은 웃음으로 젊은층들 마저 높은 호응을 나타내고 있다.
주말드라마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시청률 재미’를 보지 못했던 KBS는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시작으로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까지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며 모처럼 활짝 웃음을 만끽하고 있다.
이들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막장 코드 없이 오로지 극의 재미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작가들의 필력과 연출력이 바탕이 됐지만 배우들간의 케미와 대본 속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는 열연이 힘을 보탰다.
‘열 받고 욕 하면서 보는 드라마’라서 시청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인물들 간의 관계와 쫄깃한 극 전개 등 60분을 1분으로 만드는 제작진과 배우간의 케미가 높은 성적표를 이끌어낸 것이다.
시청자들은 만약 송중기 송혜교가 아니었다면, 만약 박신양이 아니었다면. 이런 가상을 내놓기도 한다. 결국에는 깔끔한 대본도 중요했지만 이를 제대로 살린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이 중심이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애국가 시청률’이라는 굴욕적인 타이틀까지 얻었던 KBS 월화드라마는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통해 그동안의 한풀이를 하게 됐다. 12%(닐슨코리아)의 기록은 전작 대비 3~4의 성적으로, ‘조기종영’ ‘후광 없는 후속작’ 등 부담 속 나름 선전을 한 것이며 통쾌한 승리이기도 하다. 더욱이 박신양 표 연기에 시청자들은 몰입하며 매회 자체최고시청률을 갈아치우고 있다.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경우도 40%에 육박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KBS 뿐만 아니라 지상파 드라마의 명성을 다시금 되찾게 했다. 매회 신기록을 써내려갔으며 특히 2000년대 세 번째 30% 돌파 드라마라는 기록도 남기게 됐다.
새 드라마 공식, 막장=시청률 아닌 명작=시청률
변호사 의사 경찰 등 드라마의 단골 소재는 방송사를 불문하고 드라마 상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같은 소재일 지라도 얼마나 잘 풀어냈느냐와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시청률은 정반대 곡선을 그린다.
조들호의 박신양이나 태양의 송혜교, 송중기 그리고 시그널의 조진웅 김혜수 등의 예만 보더라도 단골 직업군을 그렸지만 뻔하지 않은 변호사이고 군인이고 의사를 그려냈다. 특히 장르를 불문하고 경찰의 캐릭터들이 비슷비슷한 가운데 조진웅표 경찰 캐릭터는 많은 이들을 울리고 웃기며 역대급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의 전개가 얼마나 자극적이냐에 따라 시청률이 좌지우지 됐다. 그러다 보니 말만 하면 알만한 작가들의 막장극이 도를 넘어섰고 시청자들은 서서히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중장년층 역시 자극적이기만 한 드라마는 보기 불편해졌고 그렇게 막장의 하향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서진 유이의 MBC 주말드라마 ‘결혼계약’ 역시 막장 코드가 주를 이룰 것으로 우려했지만, 막장이 아닌 가족극을 표방하면서 전작 못지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침극이나 일일극에서 여전히 막장을 표방하고 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예전처럼 뜨겁지 않다.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자극적인 전개가 아닌, 설득과 이해가 되는 극 전개에 몰입하고 환호하고 있는 추세다. 거기엔 분명 배우들의 ‘연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시그널’과 SBS 드라마 ‘미세스캅2’가 비교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명세를 치르지 못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지만 ‘시그널’의 경찰들은 실제를 방불케 하며 극의 몰입도와 이해를 높였다. 하지만 ‘미세스캅2’ 속 경찰들은 ‘경찰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인식이 강하다. 몰입도는 이미 떨어졌으며 화제성 역시 실패했다.
시청자들의 수준은 상향세다. 예전의, 과거의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을 얻었다고 다시금 재탕 삼탕을 한다면 시청자들은 외면할 수밖에 없다. 사전 제작 드라마의 성공 이유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에서 쏟아져 나온 연기는 분명 질적으로 높은 연기일 수밖에 없다. 대본에 쫓기지 않는 작가는 자신의 필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다. 열 막장 안 부러운 ‘웰메이드’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인 셈이다.
KBS의 이번 성공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몸 값만 높은 배우가 아닌 연기파 1명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좋은 환경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의 질과 더불어 쪽대본-막장 대본의 최후가 어떠한 지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잇단 ‘막장’ ‘조기종영’ ‘애국가 시청률’로 굴욕 아닌 굴욕을 맛봤던 KBS의 이번 성공을 통해 지상파 드라마에 새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웰메이드, 잘 만들어진 드라마 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분명 인식해야 한다. 이와 맞물려 ‘연기가 되지 않는’ 배우들의 설 자리 역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시청률 참사의 바탕에는 막장과 발연기가 있음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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