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차기주자 1위? ‘유승민 현상’의 거품
여론조사서 중도·야권 지지층에 ‘인기’ 확장성 증명?
측근 낙선 ‘정치적 영향력’ 의문…단순 인기투표 주장도
새누리당 공천 파동의 ‘핵심’ 무소속 유승민 의원이 차기 여권 대선주자 1위로 올라섰다. 대선을 약 1년 8개월 남겨 둔 상황에서의 ‘총선 참패’는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권주자들의 전멸로까지 연결됐다. 정가에 이른바 ‘유풍(劉風)’이 불기 시작한 이유다.
유 의원 본인은 대권 열망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 정권 심판론 등을 기반으로 한 ‘새 인물’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면서 ‘유승민 대망론’이 힘을 받고 있다. 다만 유 의원의 새누리당 복당 자체가 순조롭지 못할 수 있고, 복당된다 하더라도 유 의원이 여권의 새 구심점으로 거듭나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을 업은 친박계가 손 놓고 구경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유풍’이 대선까지 이어지는 ‘실상’일지, 지난 대선에서 분 ‘안풍(안철수 바람)’처럼 쉽게 사그라들 ‘허상’일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중도·무당층에 인기…확장성으로 봐야”
유 의원이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은 것은 중도·무당층, 야권 지지층에 대한 확장성을 증명한 것이라는 의견이다. 총선 이후 유 의원의 ‘개혁성’이 부각되면서 세대 교체에 대한 열망이 드러났다고도 보고 있다.
유 의원은 20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4월 정례조사에서 여권 내 대선후보 지지율 1위(17.6%)를 차지했다. 13개월 간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로 꼽혔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밀어냈다. 다만 여권 지지층과 무당층에서는 6.4%로 4위,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3.0%로 8위에 그쳤다. 유 의원을 여권 내 대선후보 1위로 만든 것은 중도층과 야권 지지층이라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러한 ‘역선택’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한다. 역선택은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불리한 의사결정을 하는 상황을 말한다. 흔히 선거 정국에서 발생하는 역선택은 여론조사 상에서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진영임에도 진영을 따로 분리해 선택하도록 한다. 즉 해당 여론조사를 놓고 볼 때 중도·무당층, 야권 지지층이어도 여권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극심한 계파 갈등과 공천 파동이 여권·새누리당 지지층의 이탈 원인이 됐고, 중도층과 야권으로 흡수된 일부가 본래는 새누리당의 지지층으로 분석되는 만큼 유 의원의 지지율이 단순 ‘거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새누리당의 잠룡들의 영향력이 점차 사라지면서 새 인물에 대한 갈망이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분석실장은 21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전체적으로 볼 때 유 의원이 여권 지지층이나 무당층,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낮은 지지를 받으니까 별 거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확장성을 생각해봐야 한다”며 “대선에서는 확장성, 소위 말해 상대 진영의 표심을 뺏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후보보다 잠재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새누리당이 위기에 빠진 이유 중 하나가 오만·구태, 계파 갈등 등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 의원의 개혁성이 부각되는 상황”이라며 “새누리당 지지율 자체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딱히 역선택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 의원이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대구에서 정치 혁명을 한 것”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한줌의 바람’이 아닌 대권 구도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권 실장은 “새누리당 내의 역학구도를 봐야한다. 총선 참패 이후 공천을 주도한 친박계와 김 전 대표 등의 비박계가 모두 영향력이 줄어든 상태”라며 “유 의원이 복당할 경우 그를 필두로 개혁적인 보수층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새누리당에 ‘대안’이 없다는 것도 ‘유풍’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엄 소장은 “지난해 유 의원이 ‘배신의 정치’로 원내대표를 그만둘 때 지지율이 치고 올라갔다가 금새 줄어든 것은 김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대안이 없기 때문에 당분간 유 의원이 강세가 지속될 것이다. 복당이 안 된다하더라도 유 의원의 독자적 세력화는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단순 인기투표…실체 없는 깜짝 수치”
반면 ‘유풍’이 ‘찻잔 속 태풍’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여야의 잠재적인 대선 후보들을 모두 합쳐 놓은 여론조사에서 유 의원의 지지율은 하위권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21일 발표한 4월 3주차 주중동향에서 유 의원은 3.7%(8위)로 극소수 지지를 받았다. 전날 발표된 내용과는 달리 여권 내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9.6%)과 김 전 대표(7.8%)가 유 의원보다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유 의원이 전력투구했던 ‘자신의 사람들’ 무소속 조해진·권은희·류성걸 의원 등이 전멸했다는 점은 유 의원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곳이 대구임에 따라 그동안 유 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보인 적이 없었고, 이번 총선 결과가 ‘유승민’이라는 개별 정치인의 확장성에 대한 증명이라는 것이다. 유 의원의 지지율이 높더라도 ‘깜짝 인기투표’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유 의원이 여권 내 대선주자 1위를 한 여론조사는 인기투표 성격이 강하다”며 “유 의원의 수족이 모두 잘려나간 것을 볼 때 유 의원의 영향력이 허약하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지금 여론조사 결과는 크게 의미를 두기는 힘들다. 허상일 수 있다. 하지만 선거는 허상이 아니다”라며 “반(反)박근혜 연대의 중심추 역할도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1위를 할 수 있느냐. 야권 지지층과 중도층이 유 의원을 지지했다 하더라도 측근은 낙선했기 때문에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역선택’의 기회가 열린 상태에서 야권 지지층이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의견도 있다. 야권 차기 주자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경쟁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정부와 여당을 심판해 정권 교체를 하려는 야권과 이들의 지지층 입장에서는 새누리당의 영향력을 약화시킬만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유풍’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은 아직 무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유 의원 측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의 측근은 “단순 여론조사이기 때문에 드릴 말이 없다”고 했다. 유 의원은 지난 19일 복당 신청 후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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