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거론하며 목소리 높이는 유승민
한림대 강연서 "취임하고 나서도 약속 못지켰다" 직격
야당서 주장하는 공수처 신설에도 "안 받을 이유 없어"
한림대 강연서 "취임하고 나서도 약속 못지켰다" 직격
야당서 주장하는 공수처 신설에도 "안 받을 이유 없어"
새누리당 대권 잠룡 중 한 명인 유승민 의원이 현재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을 거론하며 원내대표 시절 냈던 제목소리를 다시 높이기 시작했다. 유 의원은 7일 "박근혜 대통령께서 당선되시기 전에 경제민주화 하겠다고 국민들한테 약속하고 당선되신 분인데 취임하고 나서도 약속을 제대로 못 지켰다"고 지적했다. 더이상 박 대통령에 끌려가서는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로, 사실상 대권 행보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유 의원은 이날 강원도 춘천 한림대학교에서 '왜 정의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을 주최했다. 그는 강연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당론과 반대되는 입장을 밝혔을 뿐더러 청년수당, 모병제, 자율형 사립고, 전기요금 등 최근 정치권 현안에 대한 언급을 내놨다. 청년수당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모병제는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내놓은 '대선 의제'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 유 의원은 '보수 개혁'을 강조하며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개혁을 할 수 있다고 확신을 하시나"는 한림대 학생의 질문에 유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개혁을 얘기할 때 저도 사람이니까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 "민주화 이후 5년 단임제를 해서 박 대통령을 포함해 여섯 분의 대통령이 배출됐는데 우리 새누리당은 거기에서 4번의 대선에서 이긴 정당으로 역사와 전통이 있다"며 "박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지만 우리는 다음 대선과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동료, 선배들에게 '바뀌지 않으면 우린 진다'고 얘기한다"며 "정당 입장에서 지고 나서 바뀔거냐, 지금 바뀌어도 내년에 이길 가능성이 낮다, 바꿔야 한다고 설득하고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왔고 유 의원은 "조금만 지켜봐달라. 그 정도 밖에 말씀을 못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정현 대표가 청와대에 동조하거나 끌려가거나 하는 부분은 저 뿐만 아니라 당 식구들도 아쉬워 할 것"이라며 청와대에 저자세를 보이고 있는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를 포함해 장관 인사나 당론을 정할 때 집권여당이지만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국회의 기능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며 "당청관계가 좀 더 수평적이고 당이 당 나름의 중심을 잡고 하는 게 맞다"고 이 대표를 질타했다.
유 의원은 청년수당을 놓고 박근혜 정부가 지자체와 대립하고 있는 데 대해 "정부는 서울시·성남시와 싸울 게 아니라 서로 설득해서 일자리 하나라도 더 만들어 청년에게 주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뜨거운 현안인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 문제도 피해 가지 않았다. 유 의원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민 세금이 들어가게 되면 부실 기업을 어떻게 처리하고 누구에게 책임을 얼마나 물을지 '정의'의 관점에서 꼭 생각해 봐야 한다"며 "대우조선해양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을) 했으면 분명히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전 경제수석(현 정책조정수석) 등 박근혜 정부 핵심 경제관료들이 모인 서별관회의에 대해 책임론을 거론한 것이다.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문제에 대해서도 "안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새누리당도 한나라당 시절 주장했었다"며 "그것(야당 주장)을 받아서 잘 협의해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저 사람들한테 셀프개혁을 맡기는 것은 국민 경험으로는 안 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새누리당은 "공수처 설치에 반대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유 의원은 또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의 '브랜드 정책'인 청년수당 제도에 대해서도 "가난한 집 학생들의 취업 활동은 어떤 식으로든 지원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라면서도 "서울과 성남은 '부자 시(市)'여서 할 수 있지만. 전라도와 강원도 등은 상품권이고 돈이고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 서울에 사는 청년이나 전라도에 사는 청년이나 취업하기 위해서는 국가로부터 똑같은 혜택을 받는 게 상식이고 정의로운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문제 역시 '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유 의원은 "과학고, 체육고 등 존재 이유가 특별히 인정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폐지하는 게 맞고, 특히 그 중 외국어고는 폐지하는 게 맞다"며 "자사고와 특목고를 그대로 두면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부터 '자사고에 보내는 부모'와 '포기·탈락하는 부모'로 완전히 갈려서 교육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여권 대선주자로 꼽히는 남경필 경기도시사가 주장한 '모병제'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비판했다. 남 도지사는 모병제를 주장하며 차기 대선의 주요 의제를 이를 부각시킬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유 의원은 "모병제는 예산 문제 이전에 정의의 문제"라며 공개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모병제를 주장하는 사람들 주장대로 병사 월급을 200만원 주는 식으로 제도를 시행하면 부잣집 자식은 군대가는 경우가 거의 없고 형편이 어려운 집 자식들만 군대에 가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대표적인 대선주자답게 이날 강연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는 유 의원의 출마 여부였다. 학생과 내빈을 가리지 않고 유 의원의 출마 여부와 그 시기를 궁금해했다. 곤란한 질문이라면 넘겨도 된다는 말에도 유 의원은 "아닙니다"고 손을 저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그는 "저 자신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거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생각을 해왔고 굉장히 깊이 생각하고 있다"며 "준비를 잘 해서 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권에 와서 대선을 세 번 치러봤는데 야당일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며 "여당을 하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잘못한 게 있다면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 돼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격도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대선을 이기기만 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러자 좌중에서는 "언제쯤 들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튀어나왔고 유 의원은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김없이 유 의원의 입에서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가 나왔다. 그 따뚯함과 정의로움 속에 누구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얽힐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유 의원은 그 빈자리를 '헌법적 가치'로 메꾸고자 했다. 평소에 헌법의 일부분을 찢어서 가지고 다닌다는 유 의원은 이날 강연에서도 가지고 온 헌법 몇 장을 꺼내 들었다.
"제정헌법부터 87년 헌법까지 정의, 공정, 평등, 복지, 교육 등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에 관련된 원칙과 가치들이 헌법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저는 늘 보수가 헌법가치를 지키자고 이야기합니다.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폐쇄적이고 극단적인 보수가 주장하는 헌법적 가치가 아닙니다. 따듯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로 갑시다. 헌법가치에 입각해서 따듯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로 가는 것이 보수당이 가야 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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