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에 '출신 학교' 기입란 '레알' 사라지나
취업 준비생들 "서류 탈락, 학벌 때문인지 의심하게 돼"
기업 인사담당자 "사정상 학벌 아예 안볼 수 없어" 고충
취업 준비생들 "서류 탈락, 학벌 때문인지 의심하게 돼"
기업 인사담당자 "사정상 학벌 아예 안볼 수 없어" 고충
#1.
서울 소재 대형 로펌에서 근무 중인 변호사 A 씨의 동기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 로스쿨 출신이다. 로펌에선 이들의 동기들이 법원이나 검찰 등에 많이 포진돼 있어 업무에 유리할 거라고 판단, 채용했다는 뒷말이 오간다.
#2.
한 지방대학교에 다니는 B 씨는 기업에서 자기소개서만 보고 채용한다는 보도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른바 기업 내 '학벌쿼터'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 대기업의 한 인사팀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C 씨(36)는 "기업별로 다르겠지만 대학별 쿼터가 아직 존재한다. 취준생과 기업 모두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며 "게다가 회장이나 기업 임원 등이 교체되면 중요 직책에서 해당 학연이 작용할 뿐 아니라 신입사원 채용에서도 알게 모르게 우대를 받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라고 공감했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 '스펙은 고고익선(高高益善)'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높은 외국어 성적과 각종 자격증을 보유한 구직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엔 취업 기본 스펙으로 알려진 '학벌 부담감'도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은 지난 9일 출신학교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불합리한 채용 생태계를 알면서 더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류 탈락? 학벌 때문이라는 생각 들어"
대전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취준생 최모 씨(27·여)는 2015년도 상반기부터 벌써 2년째 금융권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다. 그는 "학교는 물론이고 학과도 관련 전공이 아니라서 불안하다"며 "학벌이 취업 실패의 주 원인은 아니겠지만 문득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고백했다.
취준생들은 자기소개서 항목인 '출신학교' 공란을 채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입 모아 말한다. 한 금융권 자기소개서를 살펴본 결과 고등학교, 대학(3년제 이하), 대학교(4년제 이상), 대학교(편입/재입학) 순으로 학교명을 기입하게 돼 있었고 대학계열부터 주간·야간, 소재지까지 자세히 적도록 했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 자기소개서 비중이 크다고 알려진 한 식품회사 또한 출신 학교, 학과를 공통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취업 시장에서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진 구직자'를 원한다고 하지만 취준생들 입장에선 "수많은 지원자들을 스토리만 보고 뽑는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 채용에 여력 없어...학벌, 스펙 따지게 돼"
구직자의 이런 고충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418개사를 대상으로 '신입 채용 서류전형에서 학벌을 블라인드 처리하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결과 88%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기업에 따라 살펴보면 중견기업(95.8%) 중소기업(87.3%) 대기업(84%) 순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기업 인사팀장은 "중견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개인 능력과 실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규모가 작고 직원 한 사람이 맡아 성과를 내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며 "아쉽지만 자기소개서를 봤을 때 대학, 학점 등 객관적인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인재를 뽑고 싶지만 회사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이런 지적이 나오자 지난 9일 정치권에선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을 발의했다. 이들은 "한국교육개발원 등 많은 연구 조사 기관에서 국민들 90% 이상이 채용 과정에서 출신학교 차별이 있었다고 응답했다"며 "입시와 고용에서 출신학교(학력, 학벌 개념 포함)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안엔 채용 과정의 첫 관문인 지원서 제출과 면접 단계 등에서 출신학교로 차별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출신학교란을 삭제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오영훈 더민주 의원 등 18인이 해당 법률안을 제출한 상태고 새누리당과 다른 당 의원들도 유사 법안을 발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오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학벌로 지원자들을 차별한다는 것을 (채용 담당자) 90% 이상이 채용 과정에서 침묵했고 기업체에서 실수로 (대학) 등급표가 유출돼도 이 사회는 침묵했었다"며 "기회의 공정성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끈이었다. 해당 법은 그런 간절함에서 시작됐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채용 담당자 입장에선 구직자의 정보가 업무 적합성을 판단하는데 필수적이라는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오 의원은 '기업들의 반발이 크지 않겠냐'는 질문에 "법안에 대해서 아직 대기업 관계자들과 논의하지는 않았다"며 "법안 취지를 바탕으로 향후 논의를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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