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의 '제3후보 잔혹사' 이번엔 깨질까
1987년 직선제 이후 대선 살펴보니 제3후보 승리한 경우 없어
지역주의 균열·중도층 증가·정당 계파색 강화가 영향 미칠까
1987년 직선제 이후 대선 살펴보니 제3후보 승리한 경우 없어
지역주의 균열·중도층 증가·정당 계파색 강화가 영향 미칠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후 한국 대선사의 공통된 특징은 '제3후보'가 끊임없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 불신을 기반으로 한 이들은 15~20% 가량 득표율로 거대 정당 후보들을 압박하며 대선 판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선거에서 제3후보가 승리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다가오는 19대 대선에서는 제3의 후보가 한국 정치의 공고한 양당 구조를 깨고 판도를 흔들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최근 각 당의 전당대회 결과 새누리당은 친박계, 더불어민주당은 친문 중심 지도부가 들어서며 제3지대 정계개편론이 힘을 얻고 있다. 양당 외곽에서 비박계·비문 세력 등이 규합하는 것이다. 문제는 제3지대의 유력 대선 주자다. 잠룡이 많은 야권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와 정계복귀를 앞둔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입길에 오른다. 여권에서도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재오 전 의원이 제3지대를 표방하며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했고,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제3지대 빅텐트론을 주장하며 '새 한국의 비전'을 창립했다.
대선 출마를 시사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제3후보'로 등장하느냐의 여부도 판세를 가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여권후보로 분류되는 반 총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여권에서 달리 의미있는 지지율을 가진 후보가 부재한 가운데 반 총장의 선택에 따라 구도가 출렁일 수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나 김부겸 더민주 의원 등 양당의 비주류 유력주자들의 제3지대 결합은 긍정적이진 않다.
제3후보는 비록 청와대행 티켓은 쥐지 못했지만 특정 후보가 1등이 안 되게 하거나, 1등이 되게 만드는 변수 역할을 했다. 구분을 짓자면 전통적 제3섹터에 속한 인사(정주영·문국현 후보) 또는 여야 내부 경쟁에서 이탈한 인사(이회창·이인제 후보) 등 두 부류가 있었다. 지역적으로는 제3후보의 원조격인 김종필 후보를 비롯해 이회창, 이인제 후보 등 충청권 출신이 많았다. 대표적 제3후보로는 1992년 정주영, 박찬종, 1997년 이인제, 2002년 정몽준, 2007년 이회창, 문국현 후보, 2012년 안철수 후보 등을 꼽을 수 있다.
1992년 정주영 통일국민당(16.3%), 박찬종 신정치개혁당(6.4%) 후보가 얻은 득표율을 합산하면 1, 2위를 기록한 김영삼 민주자유당(42%) 김대중 민주당(33.8%) 후보의 득표 차이를 훨씬 넘는다. 제3후보가 승패의 물줄기를 바꾼 것은 1997년 치러진 15대 대선이었다. 이 선거에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39만557표(1.6%) 차이로 누르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제3후보였던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492만여표(19.2%)를 얻으며 보수표를 갈랐기 때문이다. 이후 제3후보는 킹메이커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16대 대선도 사실상 제3후보가 승패를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57만980표(2.3%) 차이로 따돌리고 신승했다. 노 전 대통령의 당선 과정에서 제3후보로 뛰었던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가 주효했다. 그해 10월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정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응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뒤바뀔 수도 있었다. 15대, 16대 두 선거를 제외하고는 제3후보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17대 대선을 2년여 앞둔 2005년 6월엔 고건 전 국무총리가 각광받는 제3후보였다. 고 전 총리는 상당 기간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보여준 안정된 국정운영능력이 높은 지지율의 원인이었다. 고 전 총리는 2006년 8월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해 5개월간 서울, 부산 등 8개 지역에 미래와 경제포럼을 만들었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고 전 총리를 국민의 이름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이런 움직임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지지자들과의 갈등을 불렀고 2007년 초 고 전 총리는 정치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도 17대 대선의 제3후보였다. 유한킴벌리 사장 출신의 문 후보는 '참신한 경제인' 이미지로 인기를 끌며 대선에 출마했다. 정동영 후보가 후보 단일화를 거듭 요구했지만 문 후보는 독자 출마를 고집했다. 문 후보는 대선에서 5.8%의 득표율에 머물렀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후보가 335만여표(15.1%)를 얻었으나 승패에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18대 대선에서는 안철수 전 대표가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와 단일화하며 중도사퇴했다.
이렇다보니 '왜 항상 제3후보는 청와대행 티켓을 거머쥐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에는 제3후보의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제3후보를 지탱하는 지지층은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전통적 무당파다.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충청권 등 정치적 중립지대 유권자가 우호세력이다. 여기에 여야 간 네거티브 공방이 가열되면서 제 1, 2섹터에서 이탈한 유권자들이 가세한다. 이 지지자들은 선거일이 임박하면 사표 방지 심리 등으로 인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지지층이 취약한 셈이다. 대선에 가까워질수록 보수·진보가 모두 중도층을 공략하면서 제3후보의 입지가 좁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제3의 정치세력을 국민이 원하는 징후들이 있다. 지난 4·13총선 때 지역주의가 붕괴될 조짐을 보인 게 대표적이다. 지금까지는 보수정당이 영남, 진보정당이 호남을 지역적 기반으로 대권 경쟁을 벌였지만 앞으로 그런 양분이 허락되지 않을 수 있다. 또 1, 2당에서 친박, 친문 후보가 등장하면서 중도층 흡수에 실패할 경우 제3후보에 성공의 기회를 주게 될 가능성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1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거대 양당의 친박, 친문 성향이 강해지면서 중도층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제3후보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고 전망했다. 엄 대표는 "한진해운 사태 등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고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국가 안보 위기가 고조되면서 국민들의 제3후보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며 "선거를 주도할 수 있는 쟁점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되 레토릭(정치적 수사)이 아닌 진정성을 갖고 국민에게 호소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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