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약 발암물질에 대혼란…식약처 '오락가락 대응' 뭇매
식약처, 병원 문닫은 주말에 '고혈압약 판매 중단' 발표…환자들 불안감 커져
219개 품목 판매 금지했다가 일부는 해제…오락가락 대응에 혼란 증폭
중국산 고혈압 치료제 원료인 '발사르탄'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돼 정부가 해당 원료를 쓴 제품에 판매 중단 조치를 내리면서, 600만 명에 달하는 전국 고혈압 환자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고혈압 치료제로 사용되는 원료의약품 중 중국산 '발사르탄'을 사용한 국내 제품에 대해 판매와 제조·수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또 중국 '제지앙 화하이' 사에서 제조한 이 원료를 수입 및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이 발사르탄에서 'NDMA(N-니트로소디메틸아민)'라는 불순물이 함유된 것을 확인한 데 따른 조처다. NDMA는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2A군으로 분류한 물질이며, 2A군은 '인간에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뜻한다.
판매·제조가 잠정 중단된 제품은 발사르탄을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된 82개사의 219개 품목이다. 식약처는 향후 조사에 따라 제품 회수나 폐기 등 추가 조치를 내릴 예정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제조 혹은 수입된 발사르탄 양은 48만4682kg이며, 문제가 된 중국산 발사르탄은 이 중 2.8%에 해당하는 1만3770kg이다. 비중은 적지만 고혈압약을 복용하는 환자 수가 작년 기준 600만 명을 넘긴 만큼 이 제품을 복용하는 환자 역시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판매 중단된 219개 품목은 판매 및 유통이 원천 차단된 상태다. 이들 의약품은 의사 처방에 따라 약국에서 조제 받아 복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인데 현재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에 '처방 금지' 경고가 등록돼 의사가 처방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자가 판매 중지 약물을 이미 복용 중인 경우다. 고혈압은 한번 앓기 시작하면 증상이 악화하지 않도록 약을 장기 복용해야 하는 탓에 한번에 몇 달치를 처방 받는 경우가 많다.
식약처는 "조치대상 의약품을 복용 중인 환자는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지 말고 신속하게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혈압 치료제는 갑작스럽게 복용을 중단할 경우 심장 및 뇌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
그러나 식약처의 긴급 발표가 나왔던 때는 주말인 토요일 오후 12시를 갓 넘긴 시점으로, 병원은 문을 닫았거나 주말 업무를 마무리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당장 의사를 만나보기 어려운 환자들은 달리 손 쓸 도리 없이 주말을 보내야 했다.
식약처 홈페이지는 판매중지 제품 명단을 확인하려는 접속자가 몰리면서 7일 늦은 오후까지 마비됐다. 주요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주말 내내 '고혈압약', '발암물질', '식약처 홈페이지' 등 연관 단어가 오르내렸다.
식약처는 조치대상 약품의 NDMA 검출량과 위해성에 대해 확인된 바는 아직 없으나, 소비자 보호를 위한 사전 예방 차원에서 판매를 중단했다는 설명이다. 아직 인체 위해성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국내 시판 중인 발사르탄 함유 의약품 573개 중 약 40%가 판매 중지된 상황이다.
보건당국의 갑작스러운 발표가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누리꾼은 "식약처의 신속한 복용 금지 조치는 이해하지만 당장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난감한 상황이었을 것"이라며 "환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책임한 대응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식약처 발표 내용도 오락가락하고 있다. 당초 발표한 219개 조치대상 의약품 중 91개 품목은 중국산 발사르탄이 함유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돼 9일 오전에서야 뒤늦게 판매·제조 중지가 풀렸다. 이밖에도 식약처는 32개 품목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결과가 나오는 즉시 발표할 방침이다.
제약사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번 판매중지 처분을 받으면 이후 원료의약품을 바꿔서 이를 해제하더라도 그새 병원 등에서 다른 제품으로 변경해버린 처방까지 되돌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판매 중지된 발사르탄 함유 의약품은 중소·중견기업이 제조한 복제약이 많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 청원인은 "식약처가 고혈압약 복용과 유통을 금지했다가 해제했던데 약을 먹으라는 거냐 먹지 말라는 거냐"면서 "이래서야 국민이 안전하게 살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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