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슈왈제네거, 실베스터 스탤론, 아메리칸 하드바디의 귀환
<하재근의 이슈분석> 현대 미국 한 측면의 살아있는 은유 같은 느낌
<하재근의 이슈분석> 현대 미국 한 측면의 살아있는 은유 같은 느낌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의 귀환이 화제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72세의 나이로 ‘터미네이터’ 역할에 복귀했다. 오는 30일에 개봉하는 ‘터미네이터 6 : 다크 페이트’에서 다시 가죽점퍼를 입고 등장한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23일에 개봉한 ‘람보 5 : 라스트 워’로 돌아왔다. 이제는 73세가 된 그가 옆집 소녀를 구하기 위해 멕시코 갱단과 전쟁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부제가 ‘라스트 워’인 것처럼 이번이 ‘람보’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한다. ‘터미네이터’도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등장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1980년대 미국 ‘하드바디’의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 미국의 자존심은 베트남전 패전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국내적으론 히피, 반전 페미니즘 민권 운동 등으로 전통질서가 와해됐다. 결정타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었다. 미국은 친미국가 이란을 잃었고 이란의 미대사관이 점거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강한 미국의 재건을 위한 애국주의 열망이 터졌다. 레이건 시대의 개막이다. 그때 강한 미국을 상징하는 ‘하드바디’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였다.
‘람보’는 원래 반전영화로, 강한 미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80년대 미국의 애국주의 열풍은 람보를 아메리칸 히어로로 탈바꿈시켰다. ‘람보2’에서 람보가 베트남에 쳐들어가 무위를 과시한 것이다. 베트남전 패배의 상처를 씻어내는 정신승리였다. ‘람보3’에선 아프가니스탄에 쳐들어가 러시아(소련)을 밀어내고 미국의 패권을 확립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록키’ 시리즈는 1985년 ‘록키4’에선 소련 하드바디를 압도하는 아메리칸 하드바디의 위력과시를 보여줬다.
강한 미국 하드바디의 시대는 아들 부시 대통령 때 2기로 이어졌다. 이란 등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강경한 대외정책을 천명했다. 중동으로 간 람보처럼 미군을 이라크로 보내 무위를 과시했다.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미국 중심의 중동질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미국 하드바디에 반발하는 이슬람 세력이 오히려 더 기승을 부려 중동이 혼란에 빠져들었다. 사담 후세인의 몰락으로, 미국이 그렇게 압박하고자 했던 이란 시아파의 영향력이 거꾸로 더 확대됐다. 이제 이란에서 이라크, 시리아로 시아파의 영역이 확장됐고, 심지어 러시아의 영향력까지 확대됐다.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겠다며 3차 하드바디로 등장한 것이 트럼프 정권이다. 트럼프도 이전 하드바디 정권들처럼 이란과 대립한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경제적 힘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패권국가이고 셰일가스로 힘을 얻긴 했지만 세계경찰 노릇은 힘에 부친다.
체면을 구기고 ‘돈타령’을 하면서 군대를 빼려고 한다.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쿠르드족에겐 배신자가 됐다. 한국에서도 주둔비 협상 노래를 부르며, 일본 군사력에 의지하려다가 반발을 사고 있다.
이때 양대 아메리칸 하드바디의 영웅들이 옛날의 바로 그 상징적인 콘텐츠로 귀환했다. 아메리칸 마초를 지향하는 트럼프 정권의 등장과 시기가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힘이 빠진 하드바디다. 영화 속에서 여전히 파워를 과시하지만 과거와 같은 그런 위력은 아니다. 점점 노쇠해가는 80년대 하드바디의 상징들. 레이건, 부시, 트럼프로 이어지면서 약화되는 미국의 힘과 묘하게 조응한다. 그런 점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이 현대 미국 한 측면의 살아있는 은유 같은 느낌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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