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일, 이제와서 표절자로 저격하는 건 과하다
<하재근의 이슈분석> 양준일 스스로 부담없이 개성대로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양준일 스스로 부담없이 개성대로 활동할 수 있게 해야
양준일 신드롬이 거세진 후, 강용석 변호사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가 양준일을 저격해 논란이 터졌다. 한마디로 ‘표절자 양준일이 미화돼 사람들이 놀아나고 있다’는 취지다. 그에 따라 양준일 표절을 비난하는 주장과 반박하는 주장이 엇갈린다.
양준일의 ‘리베카’가 1993년에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표절 판정을 받은 것은 맞다. 그때 함께 표절 판정을 받은 노래들로 신승훈의 ‘날 울리지마(김창환 작곡)’, 박미경의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이호준)’,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신성우)’, 이상은의 ‘사랑할꺼야(원경)’, 변집섭의 ‘로라(윤상)’, 임재범의 ‘이밤이 지나면(신재홍)’, 장필순-유영석의 ‘내사랑인걸(유영석)’, 장혜리의 ‘추억의 발라드(김지환)’, 최영의 ‘보여줄 수 없니(최영)’, 최성수의 ‘나의 슬픔에 그대는 타인(최성수)’, 벗님들의 ‘잃어버린 계절(이치현)’ 등이 있었다.
기라성 같은 가수들의 기라성 같은 노래들이다. 이 가수들은 그후에도 인기스타로 활동했고 지금도 매체에서 조명 받는다. 이 노래들도 계속 매체에서 소개됐다. 그런데 유독 양준일만 이제 와서 파렴치한이라고 매도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당시 심사 대상에 올랐지만 공윤으로부터 표절 판정이 보류된 노래도 있다. 노이즈의 ‘너에게 원한 건‘, 양수경의 ’문득 그대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10년전의 일기를 꺼내어‘, 윤종신의 ’처음 만난 때처럼‘, 김상아의 ’에스 오어 노‘, 임재범의 ’다시 사랑할 수 있는데‘, 장혜진의 ’꿈 속에선 언제나‘ 등은 "대조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판정이 보류됐다. 이 경우는 명확히 표절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의문이 남는다. 어쨌든 이런 노래들도 여전히 사랑받았다.
표절은 물론 나쁘다. 하지만 1990년 경엔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화를 맹렬히 학습할 때여서 선진국 콘텐츠를 참조하는 걸 업계에서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 시대적 특수성이 있는 데다, 양준일의 ‘리베카’는 작곡자가 양준일이 아니다. 다른 작곡가가 80년대에 발표했던 가요를 양준일에게 다시 줘 리메이크한 것이다. 양준일 입장에서, 만약 작곡가에게 노래를 받은 것뿐이라면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그렇게 비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리베카’의 원 가요에서 양준일의 노래로 바뀌면서 전주와 분위기 등이 변했는데, 그것이 자넷 잭슨의 노래를 도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노래를 베낀 게 아니라 전주나 분위기 정도를 참조한 것이라면 90년 당시 분위기로 봤을 땐, 그렇게 양준일만 콕 찝어서 아직까지 비난할 정도로 유난히 죄질이 안 좋은 케이스 같지는 않다. 게다가 당시는 미국 힙합을 한국화하는 것 자체에 음악적으로도 의미가 있던 시절이었다.
이 노래가 지금 발표된 신곡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30여 년 전 노래로 지금은 이벤트 성격으로 소비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그런 잣대라면 과거 노래 중에 지금 나와선 안 되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표절 사건이 지금까지 나온 내용이 전부이고, ‘가세연’에게 추가 폭로할 것이 없다면, 이런 정도로 식당에서 서빙하다 이제야 겨우 빛을 본 사람의 앞을 가로 막는 건 과하다. 표절가요 목록에 오르고도 그동안 각광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양준일이 지금 작곡자로 재평가 받는 것도 아니다. 퍼포먼스, 개성, 겸허한 심성, 이런 요인들이 핵심이기 때문에 과거 ‘리베카’ 표절 논란으로 현재 양준일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놀아난다고 하는 건 ‘오버’다.
다만 가세연이 ‘양준일이 정말 천재 맞느냐’며 의문을 표시했는데,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름 동의할 만한 말이다. 양준일은 음악적인 천재라기보다 아주 특이한 개성을 가진 뮤지션이다. 그가 가진 개성이 우리 한국에선 의미가 크다. 그런 개성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엔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양준일이 신선하다.
천재라고 하면 양준일에게도 부담일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천재로 바라보는데 거기에 부응해야 할 것 아닌가. 이러면 양준일에게도 독이 된다. 양준일을 향한 음악적 잣대도 더 엄격해진다. 그냥 양준일은 독특한 퍼포먼스를 하는 개성적인 뮤지션으로, ‘양준일 스타일’을 펼치는 사람이라고 봐줘야 양준일 스스로도 부담없이 자신의 개성대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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