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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위기, 르노삼성·한국GM과 다른 이유


입력 2020.04.08 05:00 수정 2020.04.08 04:40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르노·GM, 글로벌 네트워크 활용해 자회사 '심폐소생'

마힌드라 모기업으로 둔 쌍용차는 '자력갱생' 불가피

쌍용자동차 평댁공장 정문 전경. ⓒ쌍용자동차 쌍용자동차 평댁공장 정문 전경. ⓒ쌍용자동차

쌍용자동차가 대주주 마힌드라그룹의 신규 투자계획 철회로 위기에 처하면서 같은 외국계 자동차 기업을 대주주로 두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의 과거 위기극복 사례가 주목되고 있다. 이들은 각각 2014년과 2018년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모기업의 지원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쌍용자동차의 경영정상화에 있어 가장 큰 한계로 모기업 지원을 통한 수출물량 확대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꼽힌다. 과거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의 사례와 같은 대규모 ‘일감 투입’을 통한 심폐소생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쌍용차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 중 가장 극단적인 내수 의존도를 보이는 업체다. 지난해 연간 판매량 13만2799대 중 내수판매가 10만7789대로 전체의 81%를 점유한다.


2만5010대에 불과한 빈약한 수출실적 탓에 쌍용차는 지난해 내수 판매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에 이어 3위에 올랐음에도 불구, 전체 판매량은 완성차 업체들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한국GM의 경우 지난해 내수 판매가 7만6471대에 그쳤지만 수출이 34만755대에 달해 전체 판매량은 41만7226대로 쌍용차의 3배를 넘었다. 전체 판매 대비 수출 비중이 82%로 쌍용차와는 정 반대 구조다.


르노삼성 역시 지난해 전체 판매량 17만7450대 중 수출이 9만591대로 전체 대비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내수 판매가 8만6859대에 머물렀음에도 불구, 부산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었던 것도 수출 덕분이다. 닛산 로그 수탁생산물량의 미국 수출이 한창이던 2018년의 경우 전체 수출 실적이 13만7208대에 달했었다.


이같은 구조는 이들 3사와 각각의 모기업간 관계가 서로 큰 차이를 보이는 데서 발생한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의 경우 제너럴모터스(GM)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글로벌 생산·판매망의 일환으로 한국을 담당하는 사업체로 자리하고 있다. 브랜드와 생산 차종, 기술, 판매망 등을 유기적으로 공유한다.


반면, 쌍용차는 마힌드라의 자회사이긴 하지만 별도의 독립된 사업체다. 브랜드는 물론, 생산 차종도 다르고, 기술은 일부 공유할 수 있지만 대부분 독자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판매망도 별개다.


그룹 내에서의 지위를 따지자면 모양새는 쌍용차가 다른 2사에 비해 좋아 보이지만, 신차 개발이나 해외 판매망 구축 등에서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은 한계로 다가온다. 특히 요즘처럼 경영실적이 악화된 상황에서는 모기업으로부터 자금지원 외에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때 한국GM이나 르노삼성에 대해 해외 기업의 자동차 생산기지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는데, 요즘 같은 불황의 시기에는 차라리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기업의 생산기지 역할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2014년 4월 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르노삼성 비전선포식에 참석한 카를로스 곤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 전 회장. ⓒ르노삼성자동차 2014년 4월 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르노삼성 비전선포식에 참석한 카를로스 곤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 전 회장. ⓒ르노삼성자동차

실제 한국GM과 르노삼성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가 모기업 지원으로 기사회생한 전례가 있다.


르노삼성의 경우 지난 2011년 출시한 2세대 SM7이 시장의 외면을 받은 이후 장기간 동안 마땅한 볼륨 모델을 내놓지 못하면서 실적이 악화됐다. 이때 르노삼성에 구원투수로 투입된 차종이 르노 캡처와 닛산 로그였다.


2013년 국내 최초의 소형 SUV로 출시된 QM3는 르노의 스페인 공장에서 생산된 캡처를 엠블럼만 바꿔 들여와 국내에 판매하기 시작한 차종으로, 출시와 동시에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큰 인기를 끌며 판매량 측면에서 르노삼성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생산 측면에서는 닛산 로그의 미국 수출물량이 구세주가 됐다. 2014년 하반기부터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로그를 수탁생산하며 연간 10만대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게 됐다. 이 물량은 지난달을 끝으로 계약이 종료됐지만 이를 대체할 XM3 유럽 수출물량 배정 가능성이 열려있다.


모기업인 르노가 단기적인 자금지원보다 판매의 물꼬를 터줄 제품을 공급해주고, 공장에는 일감을 제공함으로써 르노삼성의 경영정상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2018년 5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서 산업통상자원부-GM 협력 MOU 체결식이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베리 앵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 카허 카젬 한국 GM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18년 5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서 산업통상자원부-GM 협력 MOU 체결식이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베리 앵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 카허 카젬 한국 GM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GM 역시 지난 2018년 한국GM 경영위기 상황에서 비슷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택했다. 물론 2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함께 자금지원도 단행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전세계 시장에 판매될 신형 SUV 트레일블레이저와 차세대 CUV의 생산을 한국GM에 맡긴 것이다.


지난 2월 출시된 트레일블레이저는 지난달 국내 시장에서 3187대가 판매되며 한국GM의 판매실적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1만여대의 수출 물량을 한국GM 부평공장에 일감으로 제공했다.


트래버스, 콜로라도, 이쿼녹스, 볼트EV 등 미국 GM 본사에서 생산된 쉐보레 브랜드의 차종들을 들여와 판매하는 것도 한국GM 판매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GM이 수입 판매하는 쉐보레 차종들은 지난달 국내에서 1432대가 판매되며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에 이어 국내 수입차 브랜드 3위를 기록했다.


쌍용차는 마힌드라로부터 이런 부분을 기대하기 힘들다. GM이나 르노와 달리 마힌드라는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고 해외 시장에서 기술력에 대한 신뢰도 높지 않아 마힌드라가 생산한 차종을 들여와 판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출도 자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마힌드라가 쌍용차의 해외 판매에 도움을 준 것은 한때 쌍용차로부터 G4렉스턴 일부 물량을 CKD(반조립제품) 상태로 수입해 인도에서 조립, 판매한 정도가 전부다.


모기업의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쌓아가며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쌍용차 정도 규모의 기업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기술 공유 측면에서도 선진 자동차업체를 모기업으로 둔 경쟁사들에 비해 한계가 크다. 마힌드라는 쌍용차에 대한 신규 투자계획을 철회하면서 ‘W601 플랫폼과 같은 마힌드라의 신규 플랫폼에 자본적 지출 없는 접근’을 대안 중 하나로 내놨지만 어느 정도 효용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와 관련 쌍용차 관계자는 “마힌드라는 역사가 길고 기본적인 자동차 메커니즘 분야에서는 탄탄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라며 “엔진 연비규제 측면에서만 대응이 늦을 뿐 플랫폼은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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