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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긁지 말아야할 복권? 신인 투수 계약금 순위


입력 2020.04.11 10:42 수정 2020.04.11 18:46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신인 투수 역대 최고 계약금은 10억팔 한기주

대부분의 고액 계약금 선수들 프로에서 실패

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을 따낸 2006년 한기주. ⓒ 뉴시스 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을 따낸 2006년 한기주. ⓒ 뉴시스

KBO리그의 신인 드래프트는 원년 이듬해인 1983년부터 개최, 프로야구의 역사와 궤를 함께 하고 있다.


신인선수 지명회의라는 이름으로 시작됐고, 6개 구단이 지역 연고 선수들을 먼저 고르는 1차 지명, 그리고 지역에 상관없이 데려올 수 있는 2차 지명 방식으로 열렸다.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많은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탓에 서울을 연고로 했던 MBC 청룡(현 LG)이 무려 12명의 선수를 1차 지명 때 고른 반면, 호남에 뿌리를 내린 해태 타이거즈(현 KIA)는 고작 2명만 지명하는 불균형이 발생했다.


출범한지 10년이 지난 1990년대에 들어서자 본격적인 유망주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특히 잠실 한 지붕 생활을 했던 LG와 OB(현 두산)는 지명 우선권을 놓고, 이른바 ‘주사위 전쟁’을 벌였는데 특급 선수를 먼저 뽑기 위해 밤새 주사위 연습을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드래프트에 선발된 선수는 해당 구단과 입단 협상을 벌이고 이듬해 정식으로 입단하게 된다. 이때 각 구단들은 선수들에게 계약금을 지불하게 되는데 이 액수를 통해 선수의 잠재력이 얼추 읽을 수 있게 된다.


KBO리그 역대 계약금에서 최상위에 포진한 선수들은 다름 아닌 투수들이다. ‘10억 팔’ 한기주를 비롯해 1997년 임선동(LG), 2002년 김진우(KIA), 2011년 유창식(한화, 이상 7억 원)의 계약금은 세간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다.


계약금의 규모가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시기는 90년대 말이다. LA 다저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신화를 써나가자 많은 고교 유망주들이 KBO리그 대신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고 김선우,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봉중근 등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비행기 올랐다.


그러자 국내 팀들도 특급 유망주의 유출을 막아야 했고 이때 신인 계약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한다.


신인 투수 계약금 5억 원 이상 선수들. ⓒ 데일리안 스포츠 신인 투수 계약금 5억 원 이상 선수들. ⓒ 데일리안 스포츠

2001년 신인드래프트는 캐나다 애드먼턴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우승 주역들이 등장한 해다. 당시 최대어로 평가받았던 추신수는 롯데의 1차 지명을 물리치고 시애틀로 떠났고, 추신수와 함께 고교 투톱 투수였던 대구상고 이정호가 텍사스 대신 삼성과 고졸 최고액인 5억 원에 계약했다.


2002년은 김진우라는 초고교급 투수와 대졸 유망주들이 마지막으로 쏟아진 해다. 김진우는 1997년 임선동에 이어 다시 한 번 역대 최고액인 7억 원을 받았고, 대졸 출신인 연세대의 조용준(5억 4000만 원), 한양대 강철민과 동국대 서승화(5억 원)도 잭팟을 터뜨렸다.


이후 KBO리그 신인 계약금 최고액은 KIA 한기주에 의해 다시 쓰인다. 고교 시절부터 150km 중반의 강속구를 뿌렸던 한기주는 2006년 역대 최고액인 10억 원을 받았고 지금까지 14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이듬해 LG 유니폼을 입은 봉중근도 드래프트를 거쳐 같은 액수를 받았으나 메이저리그 출신인 그를 신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5억 원 이상의 거액 계약금을 받았던 특급 투수들 중 롱런을 이어간 경우는 의외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 스탯티즈 기준)를 놓고 봤을 때 성공 사례는 김광현과 손민한, 단 둘 뿐이다.


많은 특급 유망주들이 프로에서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요인들이 꼽힌다. 먼저 어린 나이에 천문학적인 계약금을 받은 게 오히려 독이 되었고, 자신에게 쏠린 지나친 기대에 스스로 무너진 유형도 있었다. 또한 고교 시절부터 이어진 혹사 후유증에 시달린 사례도 있다.


김진우의 경우 사생활 문제로 무단이탈을 반복하다 구단으로부터 임의탈퇴 처분을 받은 바 있고 김명제는 음주 교통사고로 아예 야구를 접었다. ‘10억 팔’ 한기주와 최근 한화로 이적한 윤호솔은 안타깝게 혹사의 대표적인 예가 됐고, 유창식은 승부조작에 연루돼 야구판을 떠났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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