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기술자료 유용행위 중대한 위반”…9억7000만원 부과
현대중공업이 협력사 기술자료를 유용하다 덜미를 잡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술자료 유용행위가 매우 중대한 위반이라며 9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번 과징금은 역대 기술자료 유용행위 가운데 가장 큰 액수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조성욱, 이하 공정위)는 하도급 업체 기술자료를 유용한 현대중공업(주)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억70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중공업 하도급 업체 A사는 1975년 설립된 엔진부품 전문기업이다. 지난해 일본수출규제에 대응해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선정한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 선정 기업이다. 최근에는 모래를 이용한 3D 프린팅 분야의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여년간 핵심부품 국산화 과정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글로벌 강소 하도급 업체로부터 강압적으로 기술자료를 취득했다. 이후 자사 비용절감을 위해 해당 기술자료를 타업체에 제공함으로써 피스톤 생산을 이원화하고 단가를 인하한 후 일방적으로 거래를 중단했다.
현대중공업은 피스톤 국산화 이후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A사로부터만 피스톤을 공급받아 왔다. 현대중공업은 자사 비용절감을 위해 제3업체(이하 B사)에게 피스톤 견적을 요청하고 실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비점이 발견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A사 기술자료를 B사에 제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은 B사에 제공된 자료는 자신이 제공한 사양을 재배열한 것에 불과하며 단순 양식 참조로 제공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하도급 관계에서 원사업자가 사양을 제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B사에 제공된 기술자료들에는 사양 이외에 A사 기술(공정순서, 품질 관리를 위한 공정관리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며 “B사가 작성한 자료에서는 A사가 작성한 것과 동일한 오기가 동일한 위치에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A사에게 이원화 진행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고 이원화 완료 이후 A사에게 단가 인하의 압력을 가해 3개월 동안 단가를 약 11% 인하했다.
현대중공업은 이원화 진행(2015년 3월~2016년 5월) 기간 동안 제품에 불량이 있음을 언급하거나 요구 목적을 언급하지 않고 A사에게 작업표준서와 지그(Jig) 개선자료를 요구해 제공받았다.
또 현대중공업은 A사에게 작업표준서를 요구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양산 승인이 취소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현대중공업은 하자 발생에 따른 대책 수립 목적으로 위 자료들을 요구했으므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하자가 발생하지 않은 제품에 대한 요구도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하자 발생 제품에 대한 요구도 최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며 “그 요구에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한편 공정위가 현대중공업에 부과한 과징금 9억7000만원은 그동안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해 부과된 과징금 가운데 최대 액수다. 현대중공업은 과징금 기준금액이 상향된 신(新)과징금 고시(2018년 10월 17일 이후 행위)에 근거,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해 과징금이 부과된 첫 번째 사례로 남게 됐다.
기술자료 유용행위는 법 위반 금액 산정이 곤란한 특징이 있다. 이에 따라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로 간주돼 6억~10억원 과징금이 부과된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사업자들에게 경각심을 줘 기술자료 유용행위 근절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사안에 대해 특허청 기술전문가 풀(pool)을 활용한 기술성 분석으로 판단 전문성을 높였다. 특허청 전문가들 기술자료 분석에 근거해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었고 기술성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최소화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음으로써 우리 사회의 새로운 성장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첨단 기술분야에 대한 기술유용 행위 감시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