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銀 중 처음으로 예대율 100% 초과…정부 금융지원 압박 '역풍'
시한부 규제 완화에 한 숨 돌렸지만…코로나19 장기화에 부담백배
KB국민은행의 보유 예금 대비 대출금 잔액 비율(이하 예대율)이 규제 마지노선인 10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계속된 정부의 민간 금융지원 압박에 은행들이 빠르게 대출을 늘리던 와중 국민은행이 가장 먼저 후폭풍에 직면한 모습이다. 다행히 금융당국이 예대율 규제 적용을 유예하면서 당장 제재는 피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조치인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대출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고민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현재 신한·국민·우리·하나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들의 평균 예대율은 98.8%로 지난해 말(94.5%)보다 4.3%포인트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예대율은 보유한 예금과 비교해 대출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로, 은행들의 과도한 대출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도입한 지표다. 예금보다 대출이 많아져 예대율이 100%가 넘으면 은행은 추가 대출을 제한받게 된다.
은행별로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국민은행이었다. 조사 대상 은행들 중 처음으로 예대율이 100%를 넘기면서 규제 상한선을 돌파한 탓이다. 국민은행의 예대율은 같은 기간 94.1%에서 100.4%로 6.3%포인트 상승하며 최고를 기록했다.
비록 국민은행처럼 세 자릿수로 올라서지는 않았지만 다른 은행들의 예대율도 일제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우선 신한은행의 예대율이 95.4%에서 99.4%로 4.0%포인트 오르며 100%에 거의 육박했다. 이밖에 우리은행 역시 94.1%에서 97.9%로, 하나은행은 94.4%에서 97.5%로 각각 3.8%포인트와 3.1%포인트씩 예대율이 높아졌다.
이처럼 주요 대형 은행들의 예대율이 일제히 오른 것은 그 만큼 대출이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코로나19에 따른 금융지원이 자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전반의 충격으로 기업들, 특히 상대적으로 기초체력이 약한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들이 현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정부가 이들에 대한 은행의 정책성 자금 지원을 대폭 늘리라고 주문하면서다.
실제로 4대 시중은행들의 전체 대출 잔액은 올해 상반기 동안에만 1045조927억원에서 1091조7388억원으로 4.5%(46조6461억원)나 확대됐다. 그 중에서도 자영업자를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이 같은 기간 369조6340억원에서 394조4896억원으로 5.6%(24조8556억원) 늘며 은행 대출 증가세를 주도했다.
특히 예대율 100%를 넘어선 국민은행에서는 이런 추세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민은행의 대출은 269조62억원에서 287조2119억원으로 6.8%(18조2057억원) 늘며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중소기업 대출 역시 10조328억원에서 111조4890억원으로 8.2%(8조4562억원)나 늘며 최고 증가율을 찍었다.
그나마 다행인 측면은 금융당국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은행에 대한 예대율 규제를 다소 느슨하게 시행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은행들로서는 한 숨을 돌릴 시간을 번 셈이다. 금융당국은 당분간 은행들이 5%포인트 이내 범위에서 예대율을 위반해도 경영개선계획 제출 요구 등의 제재를 받지 않도록 유예할 방침이다. 또 올해 안에 취급한 자영업자 대출에 대해서는 예대율 가중치를 기존 100%에서 85%로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한시적인 조치다. 금융당국은 예대율 규제 완화 기한을 내년 6월까지로 못 박아 둔 상태다. 이 때문에 은행들로서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예대율을 낮추려면 보다 많은 예금을 확보해야 하는데, 단기간 이를 크게 확대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국면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는 현실도 은행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요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지속될수록 가계와 기업의 대출도 계속 확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서다. 예대율을 낮춰야 하는 은행들로서는 부담이 가중되는 흐름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좀 더 적극적인 규제 완화 제스처가 필요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예대율 규제로 은행들의 대출이 위축되면, 결국 시장을 향한 돈줄이 축소되는 악영향이 불거질 것이란 염려의 목소리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민간의 자금 수요가 지속되고 있지만 예대율 규제 상 은행들로서는 점점 대출에 따른 부담이 커지게 될 것"이라며 "코로나19가 경제적 차원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특수 상황인 만큼, 그에 걸 맞는 유연한 규제 적용 대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