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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선의 엔터리셋] 시대 못 따라가는 걸그룹 육성법


입력 2020.09.20 07:00 수정 2020.09.19 17:29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브이라이브 ⓒ브이라이브

걸그룹의 섹시 경쟁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던 시기, 그 과정에서는 수차례 성상품화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섹시 경쟁이 성상품화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걸그룹들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식으로 ‘더 섹시한 퍼포먼스’ ‘더 과한 노출’을 내세우면서 ‘가수’가 아닌 하나의 ‘노출 상품’으로 그룹의 가치를 깎아내렸다.


한 때 유행처럼 번지던 이 섹시 경쟁은 최근 많이 시들해진 모양새다. 이런 경쟁이 장기적으로 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도한 섹시 콘셉트로 데뷔와 동시에 ‘반짝’ 인기를 얻었던 다수 걸그룹들은 현재 해체됐거나, 활동이 전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최근 들어 걸그룹 사이에서는 기획사가 주도하던 ‘섹시 경쟁’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활동으로 성적대상화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룹 (여자)아이들은 ‘주체적 여성 아티스트’라는 소신을 보여주는 앨범 활동을 통해 달라진 풍토를 보여준다.


이들은 작사와 작곡, 편곡, 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리더 전소연을 필두로 한 그룹이다. 전소연은 ‘퀸덤’에 출연할 당시 “(여자)아이들은 편견에 도전하는 팀”이라며 “드레스에 어울리는 신발은 구두라는 편견을 깨고 맨발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런 방향성에 맞게 (여자)아이들은 기존 걸그룹에게 강요되던 틀을 벗어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탄탄하게 그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 잔재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기 어려운 일부 소형 기획사에서는 걸 그룹을 대중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여성의 성상품화라는 손쉬운 방법을 쓰고 있다. 최근 불거진 그룹 파나틱스를 둘러싼 성희롱 논란은 이런 걸그룹 시장의 어두운 이면을 들춘 셈이다.


지난 7일 파나틱스는 V라이브를 진행하던 중 짧은 의상 탓에 노출이 있었고, 스태프가 멤버들의 불편한 자세를 보고 다리를 가릴 수 있도록 겉옷을 건넸다. 그 순간 “(다리) 보여주려고 하는 건데 왜 가리냐”는 음성이 들려왔고, 온라인상에서는 성희롱 발언을 한 소속사 관계자에 대란 비판이 쏟아졌다. 소속사 에프이엔티는 “현장 진행 스태프의 잘못된 발언에 대해 당사는 심각성을 느끼며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멤버들과 팬 분들게 먼저 사과드린다”면서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관련된 책임자는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겠다”고 사과했다.


사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의 비판은 이어졌다. 해당 관계자가 현장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기획사의 높은 사람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걸그룹 육성법으로 멤버들을 성희롱하는 것은 물론, 업계의 물을 흐린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소속 가수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기획사가 아티스트에 대한 성상품화를 ‘모른 척’하는 것도 문제다. 에이프릴 소속사 DSP미디어는 에이프릴 진솔과 관련한 성희롱성 ‘움짤’들이 온라인상에 만연함에도 이를 방치했다. 결국 팬들이 먼저 나서 ‘에이프릴 갤러리 법적 대응 성명문’을 발표했다. 멤버 진솔이 SNS를 통해 고통을 호소한 것을 두고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허위사실 유포·성희롱·명예훼손·인신공격·사샐활 침해 등의 악성 게시물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걸그룹을 다루는 방송사들의 인식도 문제다. 한 예로 엠넷의 유명 PD는 ‘프로듀스101’을 두고 “건정한 야동”이라고 표현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한 인터뷰에서 이 프로그램의 남자판을 설명하던 중 “여자판으로 먼저 한 건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라고 말했다. 이어 “출연자들을 보면 내 여동생 같고, 조카 같아도 귀엽지 않느냐. 그런 류의 야동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도 설명했다.


걸그룹을 만들어 내는 기획사, 이들의 설 무대를 마련해주는 방송사, 그리고 소비하는 네티즌까지. 걸그룹을 성적대상화하는 행태가 말끔히 사라질 거라는 기대는 없다. 다만 그들에게 한 가지 바라는 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주는 그룹을 만듦에 있어서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업계를 망가뜨리고, 또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 먹는 '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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