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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의 디스] 기업 궁지로 몰아놓고 남북경협까지 손 벌리는 정부


입력 2020.11.24 11:14 수정 2020.11.24 20:50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대북제재 완화 가능성 없고, 北 태도변화도 없는데…"현실성 결여"

각종 규제법안으로 옭죄며 文정부 임기 내 대북 성과 달성 협조 억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연락·협의기구 발전적 재개 방안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맹목적이라고 해야 할까 안하무인이라고 해야 할까.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3일 4대그룹 등 재계 관계자들을 만나 북한의 변화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늘어놓으며 남북경협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역할 분담을 운운한 것에 대한 얘기다.


상식적으로 상대방에게 어떤 계획에 대한 ‘역할분담’을 요구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그 계획이 현실성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이해관계와도 일치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반대급부라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방이 계획에 참여할 만한 여건이 돼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장관이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한 얘기는 위 조건들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가운데서 나왔다.


우선 지금 남북경협을 운운하는 게 현실적인지에 대한 의문이 많다. 현 시점에서 남북 관계에 진전이 있을 만한 아무 징후도 없고, 대북 제재가 완화될 가능성도 전혀 찾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 장관이 정한 회동 시점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10주년이었다.


북한은 지난 6월 우리 국민의 재산이자 남북 경협의 상징적 장소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한 이후 배상은커녕 사과도 없는 상태다.


이 장관의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대북 제재 완화 여부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에서도 나온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23일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 “북한 내 비핵화 협상에 대한 진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 장관이 묘사한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CNA) 국장은 이 장관이 “앞으로 코로나 백신·치료제가 개발되고 비핵화 협상의 진전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대북 제재의 유연성이 만들어지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한 데 대해 “가정에 기반한 발언으로, 비핵화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점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내년 1월 제8차 당 대회를 계기로 경제 발전을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우선적 목표로 둘 것이라는 이 장관의 전망도, 북한으로부터 별도의 지령을 받은 게 아니라면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개인적 희망에 불과하다.


이런 비현실적인 희망론을 던져 놓고 우리 기업들에게 남북경협 역할분담을 운운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남북경협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유인 요인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을 통해 북한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정상적인 협력 파트너가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입증했다. 설령 대북 제재가 풀려 북측에 투자를 진행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나아가 국제사회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성급하게 추진하는 남북 경협에 참여할 경우 우리 기업들이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제재 대상이 될 우려도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은 “안타깝게도 지난 2년간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지 못해 저희도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해 가기를 저희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에둘러 말했지만 잘 곱씹어보면 ‘아직 남북관계가 안정적이지 않고, 남북경협을 논하기에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임기 내 대북 관계에서의 성과를 위해 기업들에게 손을 벌릴 처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기업들은 기업 지배구조와 미래 투자 여력을 뒤흔드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과 노사관계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그리고 고용관계에 대한 기업의 책임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각종 법안(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고용보험법, 근로기준법 등)들로 인해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경제단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와 국회에 각종 기업규제 법안의 철회나 수정을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대외 악재보다 정부의 반기업적 규제 법안들이 더 큰 위기 요인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 위기 요인을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부다. 그런 정부가 임기 만료 전 최대 성과물을 챙겨야겠다며 기업들에게 각종 리스크를 감수한 채 협조하라고 하니 기가 찰 따름이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사실상 ‘도루묵’이 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을 임기 내 다시 되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려는 문재인 정부, 그리고 그 총대를 멘 이 장관의 조급한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모든 일은 상식적인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정권의 목표가 이러이러하니 기업이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들이 운동권 시절에 꿈꾸던 공산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체제가 마음에 들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들이 이끌고 있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기업들을 불러 모아 남국경협을 운운하려면, 북한의 확실한 태도 변화와 그에 따른 대북 제재 완화 여부를 면밀히 파악하고, 기업들을 옥죄고 있는 규제의 목줄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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