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銀 LCR 94.0% '역대 최저'…코로나 금융지원에 '등골'
시한부 규제 끝나면 제재 대상…대출 조이기 가속화 전망
국내 시중은행들의 현금 유동성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민간 은행들의 금융지원을 독려하기 위해 정부가 잠시나마 관련 규제를 느슨하게 운영하고 있지만, 은행들로서는 이처럼 낮아진 기준마저도 준수를 장담하기 어려워진 실정이다. 이런 와중 규제 완화 종료 시점이 석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긴장감이 커지는 가운데, 은행들이 유동성 리스크 관리를 위해 지금보다 강도 높은 대출 조이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우리·하나은행 등 4개 은행들의 올해 3분기 말 평균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94.0%로, 전 분기(104.2%)보다 10.2%포인트 떨어지며 기존 최저치인 2015년 3분기 말(97.0%) 기록을 경신한 것으로 집계됐다. LCR은 국채 등 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의 최소 의무보유비율로, 순현금유출액 대비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은행 건전성 지표다.
이렇게 은행의 LCR이 낮아졌다는 것은 그 만큼 유동성 위기에 취약해졌다는 의미다. LCR은 금융위기 시 자금인출 사태 등 심각한 유동성 악화가 발생하더라도 은행이 당국의 지원 없이 30일 간 자체적으로 견딜 수 있도록 대비하기 위해 정한 규제다.
은행별로 보면 우선 국민은행의 LCR이 98.6%에서 89.6%로 9.0%포인트 하락하며 가장 먼저 90% 아래로 내려왔다. 신한은행도 99.2%에서 91.0%로, 하나은행은 103.8%에서 91.0%로 각각 8.2%포인트와 10.6%포인트씩 해당 비율이 낮아졌다. 우리은행의 LCR은 104.4%로 유일하게 세 자릿수 대를 사수했지만, 이 역시 같은 기간(115.0%) 대비 10.6%나 떨어진 수치다.
은행들의 유동성이 이처럼 쪼그라든 배경에는 정부의 압박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 대한 은행들의 적극적인 자금지원을 요청하면서 유동성 전반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주문한 채권·증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하는데 은행의 출자 부담이 커지면서 LCR 부담은 한층 가중되는 형국이다.
더욱이 코로나19 장기화로 향후 취약계층의 대출 수요가 계속 이어지면서 염려는 더 커지고 있다. 은행들 입장에선 지금처럼 빠르게 대출이 불어나면 LCR 관리에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4대 은행이 보유한 원화 대출 잔액은 지난 10월 말 1017조6301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9.5%(88조6181억원)나 증가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이들의 원화 대출이 875조8528억원에서 929조120억원으로 6.1%(53조1592억원) 늘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아직 올해가 다 가기도 전에 연간 대출량이 30조원 넘게 확대된 셈이다.
이로 인해 악화된 주요 은행들의 LCR은 예전 같았으면 당장 규제 대상이 됐을 수준이다.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은행들을 상대로 100% 이상의 LCR 유지를 의무화하고 있어서다. 이런 기준대로라면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으로부터의 개선 권고와 함께 이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행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제재를 피하고 있는 이유는 다행히 정부가 일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해 줬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상반기부터 은행의 LCR 의무 준수 비율을 85%까지 낮춰 시행 중이다. 은행들이 유동성 규제에 막혀 정부의 코로나19 금융지원에 나서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현재 은행들의 LCR은 이렇게 완화된 기준조차 지키기 버거울 정도로 나빠진 현실이다. 더욱 문제는 이 같은 조치가 몇 달 뒤면 끝나는 시한부 대책이란 점이다. LCR 규제는 내년 3월이면 다시 원래 기준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대부분 시중은행들은 규제를 피할 수 없는 입장이다.
결국 은행들은 강도 높은 유동성 관리에 돌입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인 LCR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더 많이 확보하거나 대출을 증대를 억제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이 앞으로 본격적인 대출 옥죄기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금융 시장의 불안이 큰 여건 속 단기간 대규모 자산을 모으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실질적인 대안은 대출 속도 조절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금융지원 수요가 계속되고 있지만 은행들로서도 이제 마냥 자금 공급을 늘리기엔 유동성 지표 관리 부담이 큰 실정"이라며 "최근 단행된 고액 신용대출 제한과 같은 은행들의 여신 조정이 다른 종류의 대출로도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