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이어 경찰·국정원까지 힘으로 권력기관 개편 입법 강행
與 입법독주 "잘못됐다" 비판 나오는데도 "역사적 발전" 자평
윤석열 등 '인적 청산'도 속도…'살아있는 권력' 수사 무력화
문재인 정권이 검찰과 경찰에 이어 국가정보원까지 3대 권력기관 개혁 입법을 마무리했다. 법무부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15일 재개한다. 기존의 제도와 절차, 야당의 목소리는 무시한 브레이크 없는 입법 독주 '성과'다.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완성할 기회"라며 정당성을 부여했지만, 문재인 정권이 부르짖던 '권력 개혁'은 '권력 독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찰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10일 공수처법 개정안, 13일 국정원법 개정안까지 단독 처리했다. 이 중 특히 가장 논란이 되는 건 공수처법 개정안이다. 민주당은 공수처 출범과 관련해 야당의 거부권(비토권) 효력이 사라진 만큼,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법 개정안이 15일 문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당장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가동, 이르면 이번 주 중 공수처장 후보 2명을 문 대통령에게 추천한다는 계획이다. 여권의 입맛에 맞는 초대 공수처의 출범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로 예상된다.
공수처는 문 대통령과 여권의 입장에서는 오랜 숙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문 대통령은 2011년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라며 "지나치게 비대해진 검찰 권력, 지나치게 정치화된 검찰 권력,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검찰 개혁'은 현 정권에서 자연스럽게 최우선 과제가 됐다. 다만 검찰 뿐만 아니라 경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개편으로 형태가 확대시켰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만들겠다"고 했다. 청와대도 2018년 1월 14일 권력기관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권력기관이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국정농단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정당성을 부각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권력형 비리에 대해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엄정하게 처리하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라고 한 것도 '반부패 시스템' 구축을 위한 강력한 의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칼을 겨누자, 사실상 '권력 개혁'은 '권력 독재'로 변질했다. 조 전 장관의 비리 의혹과 위선의 실태에 대해 침묵했던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7일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다음 날 "검찰 개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검찰을 향한 무자비한 압박의 신호탄이자, '권력 개혁=윤석열 찍어내기' 프레임이 짜여진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과 여권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권력 개혁은 옳다고 주장한다. 공수처 출범이 검찰의 손과 발을 묶어 정권 수사의 싹을 잘라낸다는 속내로 해석되는데도, '역사의 발전'이라 자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공수처 설치는 대통령과 특수관계자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 사정·권력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부패없는 사회로 가기 위한 오랜 숙원이자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검찰, 경찰, 국정원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이 아닌 '국민을 위한 국가기관'으로 다시 태어날 민주적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출범하기도 전에 '협치'의 대상인 야당은 물론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1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과정과 관련해 국민의 54.2%가 "잘못됐다"고 답했다. '잘된 일'이라는 응답은 39.6%,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6.2%였다. (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5515명 접촉해 500명 응답. 응답률 9.1%,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
제도적 개혁에 이어 인적 청산까지 속도가 붙으면서, '권력 독재'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가 오로지 '윤석열을 잘라내겠다'는 이유로 시작된 탓에 흠결이 상당한데도, 법무부는 15일 징계위를 재개한다. 지난 10일 1차 심의에서 징계위 구성 문제를 두고 '샅바싸움'이 이어져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만큼, 이날 심의에서는 결론이 날 것으로 관측된다. 정가에서는 해임·면직 등 중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본다.
문 대통령은 검사징계법상 징계위가 징계 수준을 결정하면, 그대로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 징계 후 불어 닥칠 정치적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징계위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막기 위해 윤 총장을 '찍어냈다'는 비판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권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당사자인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일 "대한민국은 문주공화국(문재인+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문님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문빠들로부터 나온다"고 비꼬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지난 10일 "문재인과 민주당 정권의 대한 민국 헌정파괴와 전체주의 독재국가 전환 시도가 점점 더 극성을 더해가고 있다"고 했고,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당) 원내대표은 지난 13일 "(민주당이) 180석 의석수를 '독재 면허증' 쯤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문 대통령이 야당 주장처럼 독재하고 싶다면 뭐 하러 어렵게 공수처를 만들겠느냐. 간단하게 윤 총장과 거래해서 2000명의 검사가 있는 검찰 조직을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심지어 여권에서는 법조기자단 해체 주장까지 나온다. 문재인 정권의 무리한 권력 개혁 움직임이 도리어 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정권의 정당성을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