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안 돼 두 배 성장했지만…투자 수익률 추락 '암운'
박리다매 경쟁 심화…규모의 경제에 중소형사 위기론 대두
국내 보험사들의 운용자산이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를 굴려 얻는 수익률은 역대 가장 낮은 수준까지 곤두박질치면서 보험사들로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에 놓인 모양새다. 이처럼 자산의 덩치는 불어나지만 운용 효율은 떨어지는 투자 박리다매 현상이 심화하면서, 결국 중소형사의 설 자리만 더욱 좁아질 것이란 관측에 보험업계의 긴장감이 커져만 가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재보험사와 보증보험사 등 특수 보험사를 제외한 국내 40개 일반 생명·손해보험사들의 운용자산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총 1018조8521억원으로 집계됐다. 보험업계의 운용자산 총합이 1000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전년 말(977조7006억원)과 비교하면 4.2%(41조1515억원) 늘어난 액수다.
보험업계에서 운용자산은 말 그대로 보험사가 투자에 직접 활용할 수 자산을 따로 일컫는 표현이다. 재보험 계약을 통해 생긴 자산이나 미수금 등 보험사가 주체적으로 활용하기 힘든 비운용자산과 퇴직연금·연금보험으로 따로 관리되는 특별계정 자산은 운용자산에서 제외된다. 보험업계 자산의 대부분은 이 같은 운용자산으로, 보험사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통상 총 자산 가운데 80% 가량을 차지한다.
보험업계의 운용자산 1000조원 달성은 500조원을 돌파한지 10년도 안 돼 이룬 성과다. 그 만큼 보험사들이 빠른 성장을 이어왔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보험업계의 운용자산이 처음 500조원을 넘어선 건 2012년의 일로, 당시 연말(537조9597억원) 대비 현재의 운용자산은 89.4%(480조8924억원)나 증가한 액수다.
보험사 별로 보면 역시 자산 규모 상위권은 생보사들의 몫이었다. 그 중에서도 삼성생명의 운용자산이 238조1582억원으로 단연 최대였고, 이어 한화생명(99조9615억원)과 교보생명(89조5328억원)이 나란히 2~3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손보업계 최대 사업자인 삼성화재의 운용자산이 73조8839억원으로 많은 편이었다. 이밖에 NH농협생명(66조2528억원)·현대해상(40조7466억원)·DB손해보험(38조8769억원)·동양생명(30조7760억원)·신한생명(30조5597억원)·KB손해보험(30조5526억원) 등이 운용자산 상위 10개 보험사에 이름을 올렸다.
보험사의 운용자산이 이렇게 늘었다는 것은 그 만큼 투자에 투입할 수 있는 실탄이 풍부해졌다는 의미다. 고객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불려 다시 미래에 보험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사업 구조를 가진 보험업계 입장에서, 운용자산 확대가 희소식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투자 효율이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들어 3분기까지 보험사들이 기록한 평균 운용자산이익률은 3.11%에 머물렀다. 이는 보험업계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로,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보험사들의 평균 운용자산이익률은 5%를 웃돈 바 있다.
투자 수익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저금리다. 특히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계기로 제로금리가 현실이 되면서 보험업계의 주름살은 어느 때보다 깊어진 현실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산되자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빅 컷을 단행했다. 이어 한은이 같은 해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를 결정하면서 현재 기준금리는 0.50%까지 추락한 상태다.
이런 추세 탓에 대량의 운용자산 확보에도 불구하고 보험업계의 성장세에는 제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화 상태에 빠진 국내 보험 시장의 여건 상 상품 판매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투자 수익률마저 고꾸라지며 실적을 둘러싼 위기감은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다. 보험연구원은 퇴직연금을 제외한 보험사들의 수입보험료 성장률이 올해 1.7%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더해 시행이 다가오고 있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은 자산운용을 둘러싼 보험업계의 어깨를 한층 무겁게 만드는 대목이다. 2023년 IFRS17이 적용되면 현재 원가 기준인 보험사의 부채 평가는 시가 기준으로 바뀌게 된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는 이미 IFRS17 관련 적립금을 쌓고 있는데, 이는 가뜩이나 투자 수익률이 나빠지고 있는 보험사들에게 추가 부담을 안길 전망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익률이 빠르게 하락하는 와중 이뤄지는 자산 증대는 결국 투자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가 갖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며 "저금리와 IFRS17로 재무적 부담이 더해가는 와중 이 같은 자산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큰 중소형 보험사들의 경우 생존의 위기에 내몰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