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통한 소통과 교류의 중요성 지적
중년 남성이 겪는 열병과 외로움도 표현
“열두 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정성스레 깨끗이 쓴 글씨. 진정 당신이 나에게 싫증이 났다면 이토록 세심하게 쓸 리가 없잖아요.”
독일의 서정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음이 담긴 편지, 상대를 생각하고 쓴 편지에는 정성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애편지를 썼고 국군 장병을 위로하며 위문편지를 썼다. 마음을 전달할 때면 꼭 편지를 이용했고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정성이 가득했다. 그런데 시대에 따라 마음을 전달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손편지를 통했다면 1990년대부터는 디지털이 발달하면서 영화 ‘접속’에서처럼 PC통신을 이용했고 지금은 손쉽게 사회적 관계망(SNS)이나 문자를 이용해 소통한다.
최근 SNS를 소재로 한 영화 ‘#아이엠히어’가 개봉했다. 연출을 맡은 에릭 라티고 감독은 프랑스 국민배우 알랭 샤바와 배두나를 캐스팅해 최신 트랜드를 반영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스테판(알랭샤바 분)은 SNS를 통해 알게 된 SOO(배두나 분)를 통해 삶의 활기를 얻는다. 그녀와 함께 벚꽃을 보기 위해 스테판은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그런데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SOO는 연락이 없고 그녀를 기다리며 공항 라이프를 시작한다.
영화는 현대인에게 SNS를 통한 소통과 교류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두 아들이 있고 이혼도 경험한 스테판은 SNS로 사귄 친구 SOO에게 푹 빠진다. 프랑스의 나름 유명한 식당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지만 그녀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면 다른 일은 신경 쓰지 않는다. 한국에 도착한 스테판은 SNS을 통해 마치 중계하듯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리며 자신도 모르게 한국에서 유명 인사가 된다. ‘#아이엠히어’에서는 스테판과 SOO의 만남보단 스테판이 공항에서 겪는 일들과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가 더 중요하게 묘사된다. 최근 우리 삶에서 SNS을 통한 소통과 교류를 잘 담아내고 있다.
중년 남성이 겪는 감정의 열병과 외로움 또한 잘 표현하고 있다. 50세 중년 남성들은 노화는 진행되지만 마음은 아직도 감성적이어서 혹자는 이를 ‘오춘기’라고도 한다. 이러한 감정상태에서 특히 사업에 지치고 부인과 이별한 로맨티스트 스테판은 SOO의 벚꽃을 보자는 말 한마디에 낯선 이국땅까지 찾아온다. 공항에 도착한 후 결국 어렵게 그녀를 찾지만 대조적으로 SOO의 반응은 그를 향해 눈치 없다는 식으로 냉랭하다. 영화는 서로 온도차가 다른 이들의 관계를 심리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외로움 속에서 사랑에 빠진 중년 남자의 순수한 감정을 유쾌한 시선으로 그린다.
한국영화의 위상과 세계화를 위한 방향도 보여준다. 영화 제작을 맡은 고몽(Gaumont)사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프랑스 유수의 제작자 및 배급사로 ‘레옹’, ‘언터쳐블1%의 우정’ 등을 제작했다. 에릭 라티고 또한 ‘미라클 벨리에’를 연출한 유명감독이다. 영화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촬영했고 특히 국내에서는 종로 1가 일대, 숭례문과 남산, 그리고 광장시장 등 외국인의 주요 관광지를 낯선 외국인이 바라본 시각으로 매력 있게 담아냈다. 배두나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세계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한국배우의 유럽시장 진출 가능성과 한국영화의 세계화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현대인들은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외로움 속에서 살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 마음의 소통을 갈망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과거와 달리 대면미팅에 의하기 보다는 비대면 SNS를 통해서 해결한다. 특히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사태는 우리 삶에 있어서 SNS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영화 ‘#아이엠히어’는 SNS시대의 소통과 사랑법을 알려준다.
양경미 / 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