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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올드무비㊳] 나비효과, 타임루프, 애쉬튼 커쳐


입력 2021.04.19 09:12 수정 2021.04.19 09:1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애쉬튼 커쳐 ⓒ이하 메가박스㈜미디어플렉스 제공

인생에서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는가.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그때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인생을 거꾸로 되감아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뒤 새로이 시작하고 싶은 그때가 생각나는 게 오히려 평범하다고 할 만큼 우리는 바꾸고 싶은 ‘선택의 순간’을 하나 이상 지니고 있다.


사는 게 버겁고 유난히 내게 더 가혹하다고 느낄 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되짚어보며, 꼬이기 시작한 인생 최악의 결정 혹은 실수를 찾아내서는 아쉬워한다. 그때 내가 다르게 선택했다면 지금 이렇게 살지 않을 텐데, 당시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후회한다.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한, “인생은 B(birth, 출생)와 D(death, 사망) 사이의 C(choice, 선택)이며 나는 그 결정의 결과”라는 말이 살수록 와닿는다.


지금 우리가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생의 지우고 싶은 순간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 인생의 어느 때로 돌아가 그 순간 ‘삭제’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우리도 안다. 그 순간만, 그 선택만 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땅을 치게 아쉬운 그 지점부터 다시 ‘재생’ 버튼이 눌러지길 바라는 생각 안에 ‘나비효과’에 대한 공감과 동의가 담겨 있다.


되돌리고 싶은 선택의 지점으로 돌아가 그 연애를 시작하지 않고,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그 물건을 훔치지 않고, 그 말을 뱉지 않고, 저 죄를 짓지 않았으면 그 뒤의 인생이 다르게 전개됐을 거라는 생각.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커다란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나비효과’, 작은 선택 하나가 파급에 파급을 거쳐 인생 전체를 뒤바꿀 수 있다는 생각. 어려운 카오스 이론, 혼돈 이론을 몰라도 우리는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일기를 통해 시간 이동을 하는 에반 ⓒ

영화 ‘나비효과’(감독 에릭 브레스· J. 마키에 그러버, 수입 ㈜미로비젼, 배급 쇼박스㈜미디어플렉스, 2004)는 우리는 상상이나 하고 말았던, 잘못된 선택의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한다. 시간여행(타임 슬립)을 하되 특정 시간대를 반복하며 순환하는 타임 루프 영화다.


주인공 에반(성인 역 애쉬튼 커쳐 분)은 어려서부터 종종 졸도했고 깨어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엄마는 같은 증세로 정신병원에 있는 아빠의 병과 같은 것일지 몰라 걱정하며 정신과에 데려가서 검사를 진행한다. 별다른 이상은 없다. 의사는 매일 일기를 쓰라는 처방을 내린다.


에반은 어린 시절 케일리(성인 역 에일리 스마트 분), 레니(성인 역 엘든 헨슨 분)와 친구인데 악동을 넘어 과도한 폭력성을 띠게 된 케일리의 오빠 토미(성인 역 윌리엄 리 스콧 분)의 주도 아래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토미는 소년원으로 가고, 크나큰 자책의 상처를 입은 케일리와 레니의 마음은 병들지만,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에반은 ‘위험’을 감지한 엄마의 결단으로 그 마을을 떠나 우수한 심리학도 대학생으로 성장한다.


첫사랑 ⓒ

단 한 번의 졸도 없이 순조로이 이어지던 에반의 평탄한 일상에 기억의 파편이 날아든다. 어릴 적 일기는 꺼내 읽는 에반. 에반은 일기장이 시간을 이동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일기 속 과거로 돌아가 당시엔 몰랐던 ‘기억의 구멍’을 일부 메우게 된다. 진실 찾기에 나선 에반은 어릴 적 마을을 찾아가는데, 오랜만에 만난 케일리와 레니의 인생이 너무나 애처롭다. 안타까움을 넘어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다. ‘문제의 지점’으로 돌아가, 잘못을 바로잡아 친구들의 인생을 바꾸고 싶은 에반은 일기장을 통해 그 시간 속, 어린 에반 속으로 간다.


에반이 새로운 선택을 하자 그 뒤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이 ‘빨리감기’처럼 다시 흐른다. 에반과 케일리와 레니와 토미의 인생이 달라져 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일까, 네 사람만 행복하면 되는 걸까. 웬만하면 이번에 바뀐 인생을 받아들이고 싶은데 때로는 이 시간여행을 시작한 목적이었던 사랑을 잃기도 하고, 때로는 팔다리를 잃기도 하고, 때로는 내 생명과도 같은 이의 생명이 위독하기도 하다. 에반은 ‘돌아간 지점’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4번이나 새로운 선택을 한다. 영화는 그 네 번의 새로운 선택과 그 선택이 가져오는 큰 변화를 우리 앞에 펼치며 우리네 인생에 적용된 나비효과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지키고 싶은 사람 ⓒ

영화 ‘나비효과’의 장점은 그 실감에 있지 않다. 마치 내가 하는 것처럼 에반을 따라 거듭된 인생의 선택을 하는 동안 다가오는 깨달음이다. 관객 후기들을 읽어 보면 거의 같은 생각에 도달한다. 직접 마주하시길 바란다. 문득, 영화 ‘꿈’(감독 배창호)이 떠올랐다. 조신지몽, 승려 조신의 꿈 설화를 영화로 옮긴 1990년 작. 조신(안성기 분)은 절을 찾은 아름다운 달례(황신혜 분)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달례와 달아나 세속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데, 다다른 현실은 아내의 몸을 팔아 술을 사는 회한의 인생이다. 깨보니 너무나 다행히도 한낮의 꿈, 조신은 큰 깨달음을 얻고 정진한다.


‘나비효과’의 엔딩은 ‘꿈’에 비하면 쓸쓸하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극장판, DVD, 블루레이, 감독판의 결말이 모두 다른데 개인적으로 쓸쓸한 극장판이 마음에 든다. 내게 소중한 무엇을 내려놓아야 또 다른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다. 하나의 선택을 하면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것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인생의 원리를 느낄 수 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 ⓒ

감독판 결말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나비가 없으면 날갯짓도 없다는 발상은 너무 잔인하다. 진짜 날갯짓이 없을까. 비슷한 선택으로 앞서간 에반의 두 형이 있고도 에반이 있었듯 또 다른 에반의 존재가 가능하다. 그리고 엄마가 있다. 에반의 그릇된 선택으로 인해 크나큰 상처를 안게 된 엄마의 날갯짓이 자신과 에반과 주변 이들의 인생에 어떤 폭풍을 몰고 올지 두렵다. 누구도 존재의 시작을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다. 마지막도 스스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B와 D를 제외한, 그 사이의 C에 마음을 쓰며 사는 게 인생이다.


그런 인생길에 소소한 바람을 하나 얻어 본다면. 밀라 쿠니스와 결혼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모습도 멋있고 세계적 벤처투자자로서의 애쉬튼 커쳐도 보기 좋지만, ‘나비효과’ 같은 그의 인생 영화로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 공동 설립에 참여한 사운드벤처스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내건 NFT 공모전을 실시한다는 뉴스보다 신작 소식을 기다린다. 나탈리 포트만과의 밀고 당김이 쫀득했던 ‘친구와 연인 사이’(감독 이반 라이트만, 2011), 애쉬튼 커쳐가 싱겁지 않은 배우임을 각인시킨 ‘잡스’(감독 조슈아 마이클 스턴, 2013), 그 이후를 보고 싶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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