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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독립성 '흔들'…정치권 도 넘은 일자리 포퓰리즘


입력 2021.06.03 06:00 수정 2021.06.02 10:41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중앙은행이 고용까지 관리' 한은법 개정안 봇물

당면 과제는 인플레이션…물가안정과 정면충돌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 로비에 '물가안정'이라고 쓰인 대리석 현판이 걸려 있다.ⓒ한국은행

한국은행이 물가를 넘어 일자리까지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법 발의가 이어지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을 계기로 심화하고 있는 일자리 위기에 중앙은행이 총대를 메고 나서라는 압박이다.


금융권에서는 가뜩이나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고 있는 와중 물가안정과 정면충돌하는 고용 창출 의무를 한은에게 부여하는 건 당장의 정책적 대응 측면에서도 적절치 못한데다, 장기적으로도 중앙은행에 대한 정치권의 입김만 거세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개원한 제21대 국회에서는 1년도 안 돼 총 6건의 한은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 중에서 한은의 목적 조항에 고용안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만 4건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각 법안의 대표발의자는 김경협·박광온·김주영 등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다수였고, 야당에서는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관련법을 제안했다.


현행 한은법 1조는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기관의 존재 이유를 명시하고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고용안정을 더함으로써, 한은도 일자리 관리에 적극 나서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 골자다.


정부는 물론 한은까지 일자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불거진 고용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풀이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고용시장이 받은 충격은 20여년 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취업자는 2690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21만8000명 급감했다. 1998년(-127만6000명) 이래 22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자, 취업자 수가 줄어든 것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8만7000명) 이후 11년 만이다.


문제는 물가안정과 고용 안정화는 동시에 달성하기 불가능한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은 기본적으로 물가가 과도하게 오르지 않도록 돈을 푸는 속도를 조절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고용은 반대다. 시장에 돈을 풀어야 경기가 좋아지고 일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를 잠재우면서 고용을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결론이다.


◆정치권 입김에 통화정책 혼선 우려


한은은 당장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고용 활성화를 위해 돈을 풀 상황이 아니란 얘기다. 현 시점에서 한은에 일자리 확대 역할을 부여하면 통화정책에 혼선이 올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올해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를 기록하며 한은의 연간 관리 목표인 2%를 넘어선 상태다.


정책적 측면을 넘어 금융과 정치권 사이의 구도로 봐도 한은에 고용 관리 책임을 지우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금융시장 안정을 추구하는 중앙은행과 일자리 늘리기를 원하는 정부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던 상황에서, 한은까지 고용 활성화에 동원된다는 건 그 만큼 정부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의미여서다.


한은이 물가안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1950년 설립된 뒤 40여년 동안 한은은 이른바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로 불렸다. 1997년 한은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재무부 장관이 한은 금융통화위원장을 맡으며 정부의 의중대로 통화량이 좌지우지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뿐 아니라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물가안정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중립성을 강화해온 건, 정부의 경제 성장 포퓰리즘을 쫓다가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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