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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불안정함을 동력 삼는 전도연의 연륜 [D:인터뷰]


입력 2024.07.06 11:00 수정 2024.07.06 11:00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연극 ‘벚꽃동산’ 송도영 역...27년 만에 무대 복귀

“첫 무대 때는 ‘내가 왜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선택했나, 내 발등을 찍었구나’ 싶어서 죽고 싶었고, 도망가고 싶었어요. 이런 감정을 공연이 끝날 때까지 느낀다면 명이 단축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마냥 싫은 불안감은 아니더라고요. 이젠 오히려 그 불안을 즐기고 있어요.”


ⓒLG아트센터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의 주인공, 배우 전도연의 말이다. 1997년 연극 ‘리타 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의 연극 무대는 ‘칸의 여왕’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전도연은 현재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이 한창인 연극 ‘벚꽃동산’에서 주인공 송도영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그의 출연이 일찌감치 화제가 됐던 만큼, 공연은 개막 이후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늘 갈증이 있었어요. 영화나 방송 등 케이-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글로벌해지고 있지만 장르적으론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연극은 막연히 멀게 느껴지긴 했죠. (연극) 대본이 많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니는 편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벚꽃동산’을 하면서 제가 오래 전부터 느껴왔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또 다른 에너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의 ‘불안’을 자극한 건 단순히 무대가 낯설어서만은 아니었다. 아들을 잃은 상처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빠진 여자, 가족 기업이 도산 위기에 놓이고 열여섯에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집까지 잃을 위기에서도 “다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여자, 딸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도 모자라 딸의 연인과 키스까지 하는 여자 송도영은 전도연에겐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였다.


“대본을 글로만 봤을 땐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아무리 상처를 겪은 인물이라도 자신의 고통을 딸들과 분담한다는 것이 엄마로서 이해하기 어려웠죠. 저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 인물이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컸어요. 연출가 사이먼 스톤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뿐이었어요. 연기를 하면서 느껴질 테니 ‘맑은 영혼’을 표현하라고 하시더라고요.”


ⓒLG아트센터

안톤 체호프의 유작 ‘벚꽃동산’은 연출가 사이먼 스톤에 의해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원작은 19세기 말 자본주의의 등장을 외면하다 몰락한 귀족 가문 이야기다. 사이먼 스톤은 120년 전의 러시아를 2024년 서울로 옮겨왔다. 그 과정의 첫 시작은 워크숍이었다. 대본이 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이먼 스톤은 전도연과 박해수, 손상규, 최희서 등의 배우와 일주일의 워크숍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배역 이름도 배우가 직접 정했고, 배우 개인의 내면을 살필 수 있는 사적인 이야기도 나눴다. 사이먼 스톤의 연출 방식은 무대가 낯선 전도연에겐 또 하나의 불안 요소였다.


“처음 보는 작업방식이었어요. (사이먼 스톤에게) 믿음을 갖기까진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아요(웃음). 리딩을 시작했는데 15장짜리, 소위 말하는 ‘쪽대본’을 받았어요. 이 쪽대본을 가지고 리딩을 하는 게 맞는지 의심했고 컴플레인까지 했어요. 심지어 공연 한두 시간 전에 대본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불안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두 번째 날부터 대본을 받는데 매일 걸작이 나오더라고요. 완고를 하고 나서는 연출에 대한 신뢰가 생겼죠. 지금은 사이먼을 굉장히 좋아해요(웃음).”


“배우들은 일주일 동안 사이먼 스톤의 관찰 대상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연출가는 배우를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그 덕에 배우들은 자신에게 잘 맞는 캐릭터를 입게 됐다. 그리고 사이먼 스톤은 배우들이 자신을 투영해 만든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찾아가길 바랐다. 이 불안정함에서 나오는 신선함 또한 사이먼 스톤의 의도였다.


“같은 공연이지만 매일의 무대가 달라요. 배우가 총 10명인데 호흡이 너무 좋고, 탄탄한 배우들이라 제가 어떤 실수를 해도 받아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실수하더라도 이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고 믿고, 불안정함 속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분명 제가 계산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믿어요.”


“사실 전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벚꽃동산’을 통해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저를 알아가는 시간들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공연에서도 실수하겠지만, 그만큼 신인의 마음으로 노력할 거예요. 저는 그렇게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성장하고 싶어요.”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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