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을 회복한 ‘세계랭킹 1위’ 안세영(23·삼성생명)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영오픈(1899년 창설)에 출격한다.
안세영은 지난 9일(한국시각)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펼쳐진 ‘2025 오를레앙 마스터스’ 결승에서 ‘세계랭킹 11위’ 천위페이(중국)에 게임 스코어 2-0(21-14, 21-15) 완승했다.
주무기 대각선 하프 스매시를 자랑하며 앞서나간 안세영은 8-6에서 6연속 득점에 성공했다. 대각선 드롭샷과 하이클리어로 잇따라 범실을 유도했다. 코트 곳곳을 찌르면서 천위페이를 흔든 안세영은 상대 왼쪽 구석을 찌르는 스매시로 1게임을 따냈다.
2게임에서 안세영의 수비는 더욱 빛났다. 천위페이가 안세영의 체력을 갉아먹기 위해 코트 좌우를 가리지 않고 높낮이를 조절하며 공격했지만, 안세영은 모든 셔틀콕을 다 받아냈다. 흐름을 탄 안세영은 자유자재로 공격하며 2게임마저 가져온 뒤 우승 트로피를 품고 우렁차게 포효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고, 한때 천적으로 불렸던 천위페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경기 후 천위페이는 “(안세영이)예전 정말 좋았을 때의 모습이었다”며 절정을 향하는 안세영의 기량을 인정했다.
천위페이에 대한 징크스도 완전히 털어냈다. 여전히 상대전적에서 10승12패 열세지만, 최근 8차례 맞대결에서 6승을 챙겼다.
전문가들은 “안세영이 말 그대로 심신을 회복했다”며 엄지를 치켜들고 있다.
안세영은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 획득 직후 ‘작심 발언’으로 선수 생활 중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안세영이 제기했고, 국민적 관심이 쏠린 문제를 놓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말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고강도 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안세영의 바람대로 비국가대표로서 국제대회 출전, 국제대회에서 자유로운 용품 활용 등 큰 변화가 일어났다.
마음의 부담을 털어낸 안세영은 부상 여파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압도적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늘 말했던 ‘진짜 배드민턴’을 선보이고 있다. 누구를 만나도 두렵지 않은 기세다. 지금의 반등이 더욱 반가운 것은 배드민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전영오픈 출전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안세영은 2년 전 전영오픈에서 한국 선수로는 무려 27년 만에 여자 단식 정상에 등극했다. 1996년 방수현 이후 처음이다. 당시 우승을 시작으로 이어진 국제대회에서 잇따라 우승컵을 차지했고,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그해 8월에는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는 무릎 부상 여파로 결승에서 야마구치 아카네(랭킹 4위·일본)에 져 준우승에 만족했지만, 현재의 기량과 기세만 놓고 보면 우승이 유력하다.
11일 개막하는 2025 전영오픈 대진표(경기일정)에 따르면, 최대 난적은 천위페이가 아니라 왕즈이(중국·랭킹 2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32강에서 만나는 가오팡제(중국·17위)는 직전 대회에서 안세영의 무실 게임 행진에 제동을 걸었던 상대지만, 당시 첫 게임을 내준 안세영은 이후 무난하게 승리를 따냈다. 신경은 쓰이지만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가오팡제를 밀어내면 16강과 8강에서는 쑹숴원(대만·20위)과 천위페이(중국·11위)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천위페이는 더 이상 안세영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4강에서는 지난해 결승에서 안세영에게 패배를 안긴 야마구치와 격돌할 가능성이 높고, 결승에 오른다면 왕즈이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다툴 것으로 보인다.
왕즈이는 가장 껄끄러운 상대다. 안세영은 지난해 10월 24일 덴마크 오픈 결승전, 지난해 12월 왕중왕전인 '월드 투어 파이널스 2024' 준결승에서 왕즈이에 져 탈락했다. 왕즈이의 강한 스매싱에 고전한 안세영의 하이클리어와 드롭샷도 말을 듣지 않았다. 최근 2년 사이 안세영이 특정 선수에게 2연패를 당한 것은 처음이다.
올림픽 금메달과 BWF 올해의 여자선수상을 수상하고도 왕즈이라는 찝찝한 과제를 남기고 2024년을 마무리했지만, 심신이 완전히 회복되고 맞이한 새해 첫 대회에서 왕즈이를 상대로 통쾌하게 설욕했다. 안세영은 지난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펼쳐진 ‘2025 BWF(세계배드민턴연맹) 말레이시아 오픈’ 결승에서 왕즈이를 45분 만에 2-0(21-17 21-7) 완파하고 정상에 등극했다.
지금의 기세와 컨디션이라면 안세영의 적수는 없어 보인다. ‘진짜 배드민턴’을 말한 안세영이 최고의 무대에서 ‘진짜 1위’의 위용을 다시 한 번 뽐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