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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메모리즈㊲] 스칼렛 요한슨, 아름다운 퇴장 ‘블랙 위도우’


입력 2021.07.11 14:12 수정 2021.07.12 01:49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블랙위도우' 포스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11년 동안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MCU)의 블랙 위도우가 ‘아이언맨2’(2010)에서 육감적 몸매가 크게 강조된 아이언맨의 비서로 시작해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에서 흩어진 어벤져스를 다시 ‘하나의 팀’으로 뭉치게 하는 중심축 역할을 하는 히어로로 성장하기까지, 여권의 신장이라는 사회적 배경도 한몫했으나 일신우일신 스스로 존재감을 입증해낸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배우의 역할이 컸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 등에서 보듯 어벤져스 멤버 가운데 유일하다시피 뛰어난 정보력으로 첩보원 활동을 하며 정치·외교적 경험을 두루 섭렵한 인물임에도, 유일하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7개 편(아래 해시태그 참조)의 마블 영화를 오가며 여러 남성 히어로와 애정사로 엮이는 설정에 갇혀야 했던 블랙 위도우. 그러한 교제마저도 정신적 교감과 히어로로서의 성숙으로 기억되기보다 복잡한 연애사 정도로 치부되던 나타샤 로마노프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인피니티 스톤을 얻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한 면모를 보인다.


'아이언맨2'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리즈를 거듭하며 뽕밭이 바다로 변할 만큼의 괄목상대한 성장이 반가웠던 만큼, 마지막 선택은 응원할 수 없고 이별만이 안타까웠다. 인물에 대한 초점이 몸에서 시작해 정신으로 마무리된 점은 좋았으나, 그러한 블랙 위도우의 변화와 성장을 이끈 배우 스칼렛 요한슨을 그만 봐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호크 아이를 제외한 히어로들은 모두 개별 작품이 만들어졌건만 블랙 위도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세상에 나온 바 없는 ‘홀대’가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 궁금했던 인생사는 영원히 미지의 세계에 남는 것인가 당황한 측면도 있다. 충분히 전사(全史)를 풀어내도 될 만큼 매력적 캐릭터인 것도 있지만, 훈련받은 살인 병기이기는 하나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별의 안타까움을 키웠다. 타고난 초능력자도 아니고, 신의 아들도 아니고, 아이언맨의 아크 리액터 같은 대단한 동력기나 수트 같은 소위 ‘장비빨’도 없는 그저 사람 아닌가.


블랙 위도우 특유의 착지 모습 ⓒ이하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블랙 위도우’(감독 케이트 쇼트랜드, 수입·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은 켜켜이 쌓인 아쉬움에 아쉬움을 날리는 뉴스였다. 우리는 2년을 기다려 만나는 것이지만, 블랙 위도우가 된 나타샤 로마노프를 연기한 스칼렛 요한슨으로서는 11년의 긴 기다림 끝에 자신이 그리고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을 갖게 됐다. 어렵게 세상에 나온 ‘블랙 위도우’는 한국 관객의 사랑도 뜨겁게 받고 있다. 개봉 나흘 만에 101만 명이 관람했다. 12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될 만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기세가 거센 상황에서 이뤄진 흥행이다.


영화 ‘블랙 위도우’에 열광하는 이유는 서로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세 가지가 만족스러웠다. 먼저 나타샤 로마노프가 어디서, 어떻게 살인 병기로 키워졌는지 과거사를 알 수 있다. 그 시작은 멀리 KGB(소련안보위원회) 산하 비밀조직 ‘레드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물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블랙 위도우가 등장한 일곱 편 영화 속에서 보았던 그의 성격이나 태도, 트라우마와 아리송했던 말들의 배경을 이번 여덟 번째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영화의 시점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사이쯤, 정부 반대편에 선 캡틴을 도운 죄로 도주 중인 시기여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기준으로 보면 이 또한 과거여서 블랙 위도우의 마지막 희생을 이해하는 단초를 찾을 수도 있다.



오리지널 블랙 위도우(왼쪽, 스칼렛 요한슨 분)와 계승자(플로렌스 퓨 분)ⓒ

두 번째는 나타샤처럼 살인 병기 ‘위도우’로 키워진 동생 엘레나 벨로바(플로렌스 퓨 분)와의 20년 만의 조우에서 벌이는 격투 장면의 타격감을 비롯해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의 도심 카체이싱의 속도감 등 전반적 액션이 기대 이상이다. 특히 첫 대면, 주방과 거실의 좁은 실내에서 벌이는 격투에는 자매의 서로에 대한 원망과 오해, 그리움이 한데 얽혀 있음이 역력히 보인다. 톰 크루즈나 맷 데이먼이 ‘적’과 벌이는 육박전과는 또 다른, 여성 배우들 간 액션의 장점과 묘미를 십분 살려 새로운 감성의 격투가 탄생했다.


세 번째는 마블 영화 시리즈에서 여성 단독 히어로물의 생존 가능성을 확인시켰다는 점이다. 어벤져스의 프리퀄 격이라 할 ‘캡틴 마블’(2019)에서 여성 히어로를 보기는 했으나, 능력이 너무 막강하고 성격이 평면적이어서 현실적 매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블랙 위도우’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한계가 되레 매력으로 작용하고 점차 발전해 간다는 점 또한 공감 지수를 높인다.


다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스칼렛 요한슨이 다져온 블랙 위도우의 매력이 핵심 요소이기에, 영화 ‘블랙 위도우’를 통해 마블이 공식적으로 그 후계자를 플로렌스 퓨로 선언한다고 해서 그대로 바통 터치될지는 미지수다. 아이언맨이 스파이더맨으로, 캡틴 아메리카가 팔콘으로 계승되는 것도 비슷한 숙제를 안고 있기는 하다. ‘블랙 위도우’ 단독물이 더 일찍 만들어졌어야 한다는 일부 관객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고, 마블이 인종과 성별 등 다양성을 반영한 새로운 시리즈를 모색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스칼렛 요한슨, 아름다운 마무리 ⓒ

영화 ‘블랙 위도우’의 제작과 성공은 10여 년 몸담은 마블 세계를 떠나는 스칼렛 요한슨에게 주어진 커다란 선물이다. 마지막을 독창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고, 못다 한 얘기를 할 수 있었고, 마블에 여성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확인시켰고, 마블 페이즈4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토록 여러모로 맞아떨어진 ‘아름다운 퇴장’인데 지난 6월 ‘블랙 위도우’ 홍보 행사장이나 프리미어 시사회에 스칼렛 요한슨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미국 현지에서는 임신설이 제기됐고, 확인되지 않던 소문은 7월에 들어서서 사실로 확인됐다. 미국 ‘지미 팰런 쇼’나 국내 예능 ‘유퀴즈’에 어깨 위로만 보이는 화상 출연을 했던 이유가 둘째 아이 ‘임신’인 것이다. 캐릭터는 영화 안으로 떠났지만, 새 생명은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보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퇴장’이 있을까.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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