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재정건전성 진단과 과제 세미나...2017년 이후 급격히 늘어
韓 OECD 중 재정위기관리 가장 소홀…대책 마련 시급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난 2016년까지 69년간 누적된 국가채무 보다 2017년 이후 9년 간 늘어나는 국가 채무가 더 클 정도로 최근 나라 빚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나라 빚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재정위기관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소홀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원장 권태신)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개최된 ‘한국의 재정건전성 진단과 과제’ 세미나에서 국가 채무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면서 이에 대한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경연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 국가채무 현황을 점검하고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한 이번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급격한 국가 채무 증가 속도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선진국들에 준하는 재정관리 대응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내년에는 사상 최초로 나라 빚 1000조원, 국가채무비율 50%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권 부회장은 이어 “과거 한국이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안정적인 수준으로 국가채무비율을 관리하면서 외국인들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라며 “국가재정은 한국 경제의 최후의 보루인 만큼 이제부터라도 나라살림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 ‘국가재정 전망과 재정건전성 관리’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전 조세재정연구원장)은 정부의 국가재정 운용계획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5년까지 9년간 국가채무가 782조원 늘어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016년까지 69년 간 누적 국가채무액(627조원)의 1.2배에 달하는 수치라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한국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지출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으나 아동수당 확대, 기초연금 인상 등 한번 늘리면 줄이기 어려운 항구적 복지지출 비중이 높아 재정악화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반면 G7 등 주요 선진국은 코로나 대응을 위해 늘린 재정지출 규모를 빠르게 축소하면서 오는 2023년부터는 재정건전성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이 빠른 고령화 속도와 잠재성장률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위기 극복 이후 빠르게 재정이 정상화되었던 과거 위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만성적인 재정악화에 시달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원장은 “지금이라도 재정건전성 훼손을 방어하기 위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한도를 법으로 규정하는 재정준칙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도 정부 예산안 평가’에 대한 발제를 맡은 김원식 건국대 교수(전 재정학회장)는 “내년 예산 604조4000억원 중 보건·복지·고용 분야가 216조700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35.9%)을 차지할 뿐 아니라 재정적자 기여도도 30.6%로 매우 높다”며 늘어나는 최근 재정악화 및 국가부채 증가 원인으로 복지비 부담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교육 인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내년 교육비 예산(83조2000억원)이 전년대비 12조원(16.9%)이나 늘었다”며 “교육비 지출이 방만하게 운영되면서 교육 성과가 떨어지고 사교육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이미 오랜 기간 사회보장 및 교육 지출이 늘고 경제분야 지출은 줄어들면서 재정지출의 비효율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OECD의 재정위기관리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OECD 중 재정위기 대응에 가장 소극적인 국가 중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정부정책 뿐 아니라 각 정당의 공약이 재정에 미치는 영향까지 분석하는 네덜란드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정건전화 방안으로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재정지출 감시기구 설립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광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전 조세재정연구원장) 주재로 재정건전성 제고방안에 대한 종합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자들은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선결 과제로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겸 단국대학교 교수는 “부문별한 재정지출이 국가채무 증가로 이어지면서 현 세대가 미래세대에 막대한 빚을 떠넘기는 셈”이라며 “자녀에게 빚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엄격하고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옥동석 인천대학교 교수(전 조세재정연구원장)도 “모든 정부는 재정을 지금 쓰지 않더라도 다음 정부가 어차피 쓸 것이라는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재정을 지출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며 “방만한 재정지출을 막으려면 하루빨리 재정준칙을 제정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인 위원회를 통해 정부의 재정운용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지출 구조조정이 필수적”이라며 “특히 합리적인 복지재정 총량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향후 5년 간 복지지출 증가 속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포인트로 현 정부 5년간 복지지출 비중 증가 속도(GDP 대비 4%포인트)의 절반 수준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