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적격비용' 인하 논의
연회비 등 고객 피해 전가 우려도↑
바야흐로 간편결제(페이) 전성시대다. 하지만 페이가 활성화되면서 신용카드와 현금 시장은 축소됐다. 신용카드는 써주는 사람이 없으면 수십 만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최근 연일 가맹점 카드 수수료 인하 반대 기사가 쏟아지는 것도 신용카드 시장이 위기에 처해서다. 수익성이 낮아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카드 수수료까지 내리면 손실이 발생한다. 손실이 나면 기업은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다. 결국 구조조정이 발생하고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 가맹점 카드 수수료 인하는 단순히 업계만의 이슈가 아니다. 카드 수수료 인하는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모든 것은 신용카드의 사업 구조에 담겨 있다. 금융당국이 카드 수수료를 낮추는 방식은 이렇다. 카드 수수료는 '적격비용'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적격비용은 카드사가 사용하는 비용을 분석해 계산해낸 수수료의 '원가'다. 카드사 수익과 상관없이 지출을 줄이기만 하면 적격비용은 낮아지게 된다.
금융당국이 13년 간 12번에 걸쳐 수수료를 인하하면서 카드사들은 뼈를 깎는 비용 절감을 수반하면서 생존하고 있다. 카드결제 부문에서는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재 96.6%에 달하는 가맹점이 0.8~1.6%만을 카드 수수료로 내고 있어서다. 만약 이 수수료율이 더 낮아지면 카드사는 비용을 더 깎으려고 노력할 것이 당연하다. 가장 손쉽게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업의 비용을 높이는 것이다. 이 경우엔 소비자가 내는 연회비나 인상되거나, 제공되던 혜택을 폐지하는 것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미 이 같은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8개 카드사의 연회비 수익은 2802억원으로 전년 동기 2638억원 대비 6% 늘었다. 6%는 시작이다. 카드 수수료가 인하되면 소비자가 얼마나 많은 연회비를 내야할 지는 알 수가 없다. 카드업이 폐지되면 '페이'들은 더 높은 수수료를 들고 소비자를 찾아갈 것이다. 실제로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등이 적용하고 있는 결제 수수료는 1.1~2.5% 수준이다.
카드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페이가 나날이 성장하고 있지만, 카드결제의 간편함이 쉬이 잊히진 않을 것이다. 소비자 가운데 그 누구도 카드 없는 세상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논리에 지배된 금융정책이다. 정부와 당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의 일환으로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려 하고 있다. 카드 노조가 길거리에 나서 "선심성 정책의 희생양이 되지 않겠다"고 외친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시장경제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장경제주의는 다양한 경제주체가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게 하는 판을 깔아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만약 카드사 수수료가 실제로 서민의 고혈을 빨 정도로 높다면 공정거래를 방해한다는 논리가 적용돼야 옳은 것이다. 과연 현재 정치권이 주장하는 것처럼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수수료를 인하한다는 논리가 이치에 맞는지 시장경제주의적 입장에서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