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글로비스 블록딜 ‘실탄 1조’
현대ENG 공모 구주매출 75%
“상반기 지배구조 개편 구체화”
LG에너지솔루션의 뒤를 이을 대어급 기업공개(IPO)인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요예측에 나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은 이번 공모 구주매출과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으로 조 단위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상장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건설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날부터 26일까지 이틀간 기관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이어 다음달 3~4일 일반 청약을 거쳐 다음달 중순 코스피에 상장한다. 희망 공모 가격은 5만7900~7만5700원, 공모 규모는 9264억~1조2112억원이다. 예상 시가총액은 4조6300억~6조500억원이다. 공모가를 상단으로 확정할 경우 건설업계 대장주인 현대건설의 시총 규모를 뛰어넘게 된다.
특히 이번 수요예측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의 구주 매출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전체 공모 주식 1600만주 중 구주 매출은 75%(1200만주)를 차지한다. 공모가가 상단에서 확정되더라도 회사에 유입되는 자금 규모가 3028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약 9000억원의 현금은 정의선 회장(4044억원),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1076억원), 현대글로비스(1524억원), 기아·현대모비스(각 1220억원)에 돌아간다.
업계는 이 구주 매출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자금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21.4%)→현대차(33.9%)→기아차(17.3%)→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정 회장의 현대차그룹 핵심3사 지분율은 현대차 2.62%, 기아 1.74%, 현대모비스 0.32%에 그친다.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려면 정 회장은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해온 현대모비스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최근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이 각각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6.71%, 3.29%를 칼라일그룹에 매각한 것도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정 회장의 주식 매각대금은 약 2009억원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하게 되면 또 6000억원 가량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은 1조110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된다. 시장은 이를 현대모비스의 지분 매입에 사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 명예회장이 보유 중인 지분을 승계하고 여기에 들어가는 세금을 납부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변화와 경영 승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이 그 준비 과정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을 통해 확보된 현금에 더해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대금까지 더하면 현재의 순환출자 고리를 일부라도 끊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상반기에는 현대차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디테일이 좀 더 구체화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현대차그룹이 발표했던 지배구조개편안 내용도 재차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의 모듈·AS부품 사업을 분할하고 정 회장의 지분이 높은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후 현대모비스 지분을 오너일가가 사들이는 방식으로 지분율을 높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최 연구원은 “2018년에 추진했던 지배구조 개편안을 다시 꺼낼 수도 있고, 기아차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23.2%에 대한 순환출자 일부 해소 작업에 투입될 가능성도 있다”며 “대주주 입장에선 순환출자 해소와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분 확보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