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 “금리정책, 항공모함 운항처럼 힘들어”
차기 한은 총재,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시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전날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서 기준금리를 현 1.25% 동결 결정을 끝으로 한국은행 총재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로써 이 총재의 8년에 걸친 금리 결정도 마무리 됐다.
이 총재는 1977년 한국은행에 입행에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총재로 임명됐다. 이후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 차례 연임하며 총 8년 간 중앙은행 수장으로 금통위를 이끌었다. 이 총재의 퇴임은 다음 달 31일이다.
24일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서 소회를 묻는 질문에 이 총재는 “항공모함을 운항하듯이 선제적으로 앞을 내다보고 통화정책의 기조와 방향을 결정하는 게 어려웠다”며 “금리는 모든 경제 주체에게 무차별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기대효과도 있지만 치러야 할 대가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통화정책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난 후에 가능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 ‘매’ 가장한 ‘비둘기’…위기속 경기회복 지원
이 총재는 한은에서 커리어를 전부 쌓은 정통 중앙 은행맨으로, 취임 초기부터 “금리 방향은 인상하는 쪽”이라며 매파본색(통화 긴축 선호)을 드러냈다.
그러나 취임 보름 만에 세월호 참사 여파로 내수 경기가 악화되자 그 해 8월, 기준금리를 2.5%에서 2.25%로 낮췄다. 이후 2015년 5월 메르스 사태와 2016년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의 악재가 이어지자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당시 최저치인 1.25%로 인하했다.
이후 이 총재는 임기 종료를 앞둔 2017년 11월에 국내 경제 회복세가 뚜렷해졌다고 판단,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로 올리며 첫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재연임이 확정되고 난 후 2018년 11월에는 1.75%까지 한 번 더 올렸다. 하지만 2019년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 수출규제 등의 영향으로 그해 7월과 10월 기준금리 인하를 연속 단행해 1.25%까지 내렸다.
금리 인하는 계속됐다. 이 총재는 2020년 초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되던 3월 16일에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0.5%p나 한꺼번에 낮추는 이른바 ‘빅컷’을 단행했다. 이어 같은 해 5월, 추가 인하로 사상 최저 수준인 0.5%까지 떨어뜨렸다. 이어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추가 인상을 단행하며 코로나19 이전 금리 수준인 1.25%까지 끌어올렸다.
이 총재는 2014년 4월 취임한 이후 금통위 의장으로서 모두 76차례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주관했다. 기준금리 인하는 9번, 인상은 5번 단행했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대체적으로 금리 인하에 대해 부정적인 듯한 발언을 하지만 실제로는 인하 기조가 이어짐에 따라 그를 ‘매를 가장한 비둘기’라고 평가했다. 반면 발 빠른 기준 금리인하로 경기 회복을 지원하는 등 대응력은 과감하고 선제적이었다는 인정도 받고 있다. 실제 지난해 말 그의 임기를 평가하기 위해 한은 노조가 직원 7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내부 설문조사에서 30%가 이 총재를 ‘우수’ 또는 ‘매우 우수’, 50%는 ‘보통’이라고 평가했다.
◆ 한은, 독립성 시비·나랏돈 퍼주기 논란도
이 총재가 한국은행 총재 자리에 앉은 후 기준금리가 네 차례나 연속 인하되던 당시 한은의 독립성 시비가 수면위로 올랐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들이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을 직간접적으로 주문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총재는 기준금리 결정이 한은 고유의 권한임을 강조했지만 결국 금리 인하 압박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2015년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것을 주장하자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금리 인하를 다시 압박했고, 한은은 그해 6월 기준금리를 연 1.50%로 내렸다.
뿐만 아니라 한은이 나랏돈 퍼주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면서 국채를 많이 찍어내 국채 금리가 오르자 한은이 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했다는 것이다. 이에 한은 보유 국채는 약 30조원으로 최근 2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 열어둬
현재 이 총재는 향후 차기 한은 총재가 주재하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1.5%로 한 차례 더 올려도 긴축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앞으로의 정책 기조에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라며 “성장 흐름이 예상대로 간다면 물가 오름세도 높고 금융 불균형 위험도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완화 정도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하는 게 금통위 다수 의견”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에 따르면 차기 한은 총재 하마평에는 이승헌 현 한은 부총재와 윤면식 전 부총재 등이 오르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각 대선 후보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경제 전문가들도 잠재적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올해는 특히 대선 정국과 맞물려 있어 후임자 지명이 대선 이후에나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새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의견 조율이 될 때까지 당분간 부총재 대행 제제로 운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