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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없애는 콘텐츠②] 배리어프리 버전, 제공만 한다고 ‘프리’ 일까


입력 2022.04.14 14:30 수정 2022.04.14 10:42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장애인 특성 아닌 제작 과정에서의 편의만 고려…최근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

지난 2월 3일 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4명이 모두 참여하는 TV 토론회가 처음으로 열렸지만, 수어를 사용하는 일부 청각장애인들은 그들의 말을 모두 이해하기 힘들다고 호소했었다.


방송사 중계 과정에서 수어 통역사 한 명이 네 명의 후보와 사회자의 모두 전달하면서 무려 ‘1인 5역’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두 명 이상이 발언을 주고받을 경우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총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 대선 토론회 내내 청각장애인들은 그들의 발언을 일부만 이해해야 했다.


ⓒ넷플릭스 화면해설 예시. 기사 내용과는 무관.

지난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 장애인 인권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차별진정을 제기하며 관련 문제를 호소한 바 있었다. 이에 인권위가 2018년 5월 “선거방송 화면송출 시 2인 이상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라”라고 권고했으나, 여전히 제대로 된 개선을 이뤄지지 않았던 것.


물론 대선 토론회를 비롯해 뉴스 등 생방송으로 바쁘게 그들의 말을 전달하는 경우에는 한계가 분명 있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이번 대선 토론회는 결국 수용자의 편의는 고려하지 않은 ‘형식적인’ 제공으로만 남게 됐다.


그러나 사전에 시간을 투자해 제작하는 배리어프리 버전 콘텐츠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콘텐츠를 그대로 즐기기 힘든 장애인, 고령자 등은 수어 통역을 비롯해 대사 외 소리까지 자막으로 표현하는 폐쇄자막, 시각장애인이 인지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몸짓, 기타 상황 등 영상 요소들을 언어로 전환해 설명해주는 화면해설 등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 드라마 영화, OTT 콘텐츠, 연극, 무용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배리어프리 버전이 제작되고 있다.


다수의 이용자들은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제작되는 콘텐츠가 한정적인 것은 물론, 폐쇄자막이나 화면해설의 질이 떨어져 제대로 된 이해가 힘든 경우들이 많다고 말한다. 장애인들의 시청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제작되는 배리어프리 버전마저도 부족함이 크다는 지적이다.


평소 국내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한 청각장애인 시청자는 그 이유에 대해 “캐릭터들의 사투리 대사를 모두 표준어로 바꿔 전달하는 경우들이 있다. 사투리와 표준어의 맛은 분명 다른데, 이는 보는 이들에게 객관적 정보만 이해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일본어와 같은 외국어 대사도 그냥 한국어로 표기해 몰입이 깨지기도 한다. 제대로 전달한다는 의도보다는 그냥 이러한 것들을 ‘제공했다’는 것에만 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몸짓 등 영상 요소들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화면해설 서비스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견이 이어졌다. 특히 TV 프로그램들의 화면해설 방송은 10%가 의무편성이지만 비율만 정해져 있을 뿐 편성 시간이나 장르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권고는 없다.


이에 인기작은 화면해설 버전이 제작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는가 하면, 대다수의 콘텐츠들이 재방송에 한해 제공되면서 이른 오전이나 늦은 밤 편성이 돼 놓치는 일도 잦았다. 한 시각장애인 시청자는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보는 게 아니라, 한정적인 선택지 안에서 골라야 하다 보니 화면해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라며 “어렵게 원하는 방송을 시간 맞추더라도 낭독 수준에 그쳐 오히려 몰입을 깨는 경우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런 이유로 화면해설을 아예 활용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라고 말했다.


화면해설 작가 겸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대표 강내영 씨는 “지금은 많이 개선이 됐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한 번에 동시 제공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어느 정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각장애인들은 음성화면해설까지 함께 듣는 불편함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라며 “제작 과정에서의 편의 때문이었겠지만, 이는 장애인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넷플릭스 등도 많이 접하면서 개별 맞춤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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