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 6월26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열정 배우 서만석입니다”
뮤지컬 배우 서만석은 2005년 데뷔해 17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 지난달 1일부터는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뮤지컬 ‘데스노트’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경찰국 베테랑 형사 ‘이데’ 역을 맡은 그는, 캐릭터의 디테일한 감정까지 잡아내면서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평소 관계자들, 동료 배우들 사이에서 그를 ‘갓상블’로 추켜세우는 것도 이해가 된다. 수많은 앙상블들 사이에서도 그가 ‘갓상블’로 블리는 건, 캐릭터의 크기와 상관없이 오롯이 무대에서 그 역할이 되고자 하는 열정 때문이다. 데뷔 전부터 열정 하나로 무작정 상경했고, 그 열정은 점점 몸집을 키우고 있다. 그의 17년 배우 인생에서 ‘열정’은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다른 배우에 비해 데뷔가 조금 늦었다고 들었는데요, 뮤지컬 배우 이전엔 어떤 삶을 살았나요?
가수가 꿈이었어요. 열정과 현금 20만원을 들고 무작정 가수가 되겠다고 서울로 상경했죠. 아, 참고로 저는 부산 사나이입니다. 하하.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가수로 활동도 해봤고요. 결과는 좋지 않았어도 도전했고, 이루었고, 후회는 없습니다. 결국은 생계를 위해 코러스 활동을 했고요.
-뮤지컬 배우가 되고자 했던 계기는요?
그 당시엔 노래 할 수 있는 건 가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교 교양수업에 뮤지컬이 있었죠. 과제 중에 ‘공연보고 감상문 쓰기’가 있어서 그때 처음으로 뮤지컬을 보게 됐는데 ‘내가 노래 할 수 있는 곳이 여기도 있구나’라고 알게 되었고, 무작정 뛰어들어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웃음).
-처음 꿈을 이뤘을 당시, 그러니까 데뷔 무대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데뷔 무대 첫 공연 3일 전에 발가락이 부러졌고 병원에서는 공연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전 고민 없이 깁스 대신 압박붕대를 감아 달라고 했고요. 공연을 해야했거든요. 그만큼 절실했고 간절했어요. 공연 2시간여 동안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웃음).
-주·조연 배우에 대한 갈망은 없었나요?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처음 시작할 때 저의 꿈은 앙상블이었어요. 뮤지컬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에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걸 다 할 수 있는 게 앙상블이더라고요. 전 그냥 지금도 무대가 너무 좋아요. 무대에 서있는 전 어디서든 주인공이니까요.
-서만석 배우가 생각하는 앙상블의 매력은?
공연에는 시대, 배경이 있고 그 속에 어느 마을이 존재하죠. 그 마을에 주인공만 살고 있다면 1인극이겠죠? 하지만 뮤지컬은 마을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 속에 한 명의 이야기를 들려주죠. 그 한 명의 주인공과 인연이 있는 모든 이들이 앙상블이고요. 꼭 필요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하.
-‘데스노트’와는 어떻게 인연이 됐나요?
8살 어린 동생에게 물었어요. ‘데스노트’를 아냐고요. 그랬더니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교과서 뒤에 몰래 끼고 미쳐버릴 듯이 재밌게 봤던 만화’라고 하더라고요. 이보다 더한 설명이 무엇이 있을까 싶어 무작정 오디션을 보게 됐습니다.
-연습 과정에서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다면 들려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웃픈’ 에피소드는 코로나로 힘들었던 연습 과정이죠. 악조건에서도 ‘데스노트’ 공연을 올리겠다는 배우, 스태프들의 열정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번 ‘데스노트’에서는 형사 이데 역을 맡고 계시죠.
‘이데’ 형사는 베테랑 아제입니다. 수사팀의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고, 수사팀에서 자칭 분위기 담당이라고 하지만 아제 개그, 거칠고 투박하지만 지갑 속에 가족사진을 넣고 다니는, 남모르게 따뜻한 남자죠(웃음).
-가족 때문에 수사팀에서 유일한 이탈자가 되기도 하죠. 캐릭터의 감정선을 설정하는 게 어떤 캐릭터보다 더 중요했을 역할인 것 같기도 해요.
처음 사건이 시작 됐을 땐 내가 해야 할 일이니 ‘키라, 내가 잡아주지’로 시작했다면 수사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고 ‘키라’라는 존재의 능력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면서 경찰국에까지 공포가 번지게 되죠. 이데 형사는 자신 역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때쯤 공포 속에서 마지막까지 정의와 가족을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가족을 택하게 되는 거죠. 마지막까지 ‘정의’ ‘가족’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데 형사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보였나요? 하하.
-‘데스노트’에서 가장 애정하는 넘버(혹은 장면)가 있다면요? 이유도.
제가 ‘소이치로’ 역 커버라 그런 건 아니지만 전 ‘라이토’와 ‘소이치로’가 부르는 ‘선을 넘지마’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 장면이 아버지가 생각하는 정의와 라이토가 생각하는 정의가 다르다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요. 또 라이토가 잘못된 정의로 가기 시작한 부분이기도 한 것 같고요.
-‘데스노트’가 연일 매진 기록을 쓰고 있는데요. ‘데스노트’의 어떤 매력 때문일까요?
이번 ‘데스노트’의 매력은 새로움입니다. 새로운 도전, 시도들이 공연 곳곳에 잘 녹아있지 않나 싶어요.
-‘데스노트’의 다음 시즌에 함께 하게 된다면, 또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으신가요?
어찌 보면 제 성격과 비슷한 ‘류크’, 그리고 제 성격과 반대라서 더 매력적인 굳건한 정의의 ‘소이치로’ 역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간 ‘맘마미아’ ‘시카고’ ‘마틸다’ ‘빌리 엘리어트’ 그리고 이번 ‘데스노트’까지 많은 작품과 함께 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를 꼽자면요?
이 질문이 가장 어렵네요. 굳이 한 작품을 꼽자면 저는 ‘마틸다’를 선택할게요. 제가 스윙으로 참여 했던 작품인데 앙상블 한명, 한명 역할이 있고 스토리가 있어서 다 해보고 싶었는데 진짜 다 해보게 된 거죠. 모든 캐릭터를 다 경험하게 되면서 ‘이 작품, 정말 재미있고 행복한 작품이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벌써 데뷔한지 10년이 훌쩍 넘었어요. 그동안의 10여년 배우로서의 생활을 되짚어 보자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고 싶다고 할까요? 하하. 코로나19 이후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져 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넌 그 무대에서 어떻게 서있었니?’라고 묻기도 하고요. 이런 질문들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즐기고 있어’라고요. 결국 이 코로나를 버티고 무대로 돌아가자는 결론에 도달했죠. 저는 배우로서 무대를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지금도 최선을 다해 즐기고 있습니다.
-꾸준히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서만석 배우의 원동력은?
초긍정의 밝은 에너지입니다. 난 뭐든 할 수 있다!
-‘갓상블’이라고, 서만석 배우에 대한 칭찬도 자자해요. 스스로 생각하는 ‘배우 서만석’의 매력은?
제가 공연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빌리 엘리어트’ 때는 ‘너 진짜 광부 같다’고, ‘맘마미아’ 때는 ‘너 그리스 섬 주민 같다’고, ‘데스노트’ 때는 ‘너 영등포 경찰서 형사 같다’고요. 어떤 작품에도 잘 어울리는, 어떤 옷이든 잘 소화하는 것이 저의 매력 아닐까요? 하하.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지치고 주저앉고 싶은 일들도 겪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처음으로 욕심이란 걸 부렸을 때 어린 마음에 배우를 쉽게 보는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실력을 점검하기 전부터 배역을 먼저 하고 싶었던 거예요. 스스로에게 물었죠. ‘넌 배역이 하고 싶은 거야, 아님 무대가 좋은 거야’라고요. 그런데 답은 간단했어요. 슬럼프도 의외로 쉽게 넘겼고요. 전 역시 ‘무대’가 좋았거든요. 짧은 슬럼프를 끝내곤 앙상블이든, 작은 역할이든 캐릭터의 크기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았죠. 뭐가 됐든 최선을 중요한 기준이 되지 못했어요.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배우로서의 신념이 대단한 것 같아요.
‘빌리 엘리어트’를 할 때 박정자 선생님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꾸미지 말고 즐기라’고요. 즐기면 그게 곧 제가 된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의 말씀의 뜻을 알 것 같았어요.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박정자 선생님의 이 말씀이 제 배우로서의 소신이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만석 배우가 꿈꾸는 미래. 최종 목표 등도 들려주세요.
저는 지금도 매일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얘기합니다. ‘뮤지컬 오래 하고 싶다’고요. 제가 꿈꾸는 미래는 코로나 때문에 온 국민이 힘들고 많은 배우들이 일터를 잃는 이런 일이 다시 반복 되지 않는 세상, 배우로써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요. 그리고 저의 최종 목표이자 꿈은 박정자 선생님처럼 오래 오래 배우로 무대에서 숨 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