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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식 일국양제란


입력 2022.07.07 04:04 수정 2022.07.06 07:00        데스크 (desk@dailian.co.kr)

中, 보안법 제정·선거제 개편 일국양제 훼손

반중인사 체포·비판 언론 폐간 민주주의 말살

3년새 50여만 홍콩인 ‘英 해외시민’ 여권 취득

習 “홍콩 일국양제의 성공은 온 세상이 인정”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을 맞은 지난 1일 홍콩섬 완차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존 리(왼쪽) 신임 행정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앞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홍콩 신화 연합뉴스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을 맞은 지난 1일 홍콩섬 완차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존 리(왼쪽) 신임 행정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앞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홍콩 신화 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일 홍콩 완차이(灣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홍콩 주권반환 25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공존)가 세상이 공인하는 성공을 이뤘다”고 자찬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 정부는 홍콩이 독자적인 지위와 강점을 유지하고 국제금융과 해운, 무역의 중심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것을 지지한다”며 “홍콩은 자본주의 제도를 장기간 그대로 유지하고 고도의 자치권도 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30여분간 진행된 연설에서 일국양제를 스무 번이나 언급하며 일국양제의 장점을 설명하고 변함없는 이행을 강조하는데 대부분 할애했다.


그러나 시 주석이 밝힌 일국양제, 즉 ‘중국식 일국양제’는 “홍콩이 영국 통치하에 경험했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50년간 유지해야 한다”는 홍콩인이 말하는 일국양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2014년 홍콩 행정정관의 직선제를 요구한 ‘우산혁명’에 이어 2019년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시위에 수백만 명이 동참하자 식겁한 중국이 2020년 홍콩국가보안법(보안법)을 제정함으로써 홍콩인이 바라는 일국양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중국이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도입한 보안법을 빌미로 홍콩 민주진영 정치인과 활동가들을 잡아들여 인권을 짓밟았다. 2019년 이후 민주인사 1만 명을 체포해 수천 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고, 우산혁명을 이끈 조슈아 웡(黃之鋒) 등 홍콩의 주요 민주인사들을 국가전복 기도혐의로 징역형을 선고하며 족쇄를 채웠다.


지난해에는 중국 정부에 충성하는 ‘애국자’만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선거제 개편을 통해 홍콩 장악력을 강화했다. 선거제 개편 이후 치러진 입법회(의회) 선거는 친중 진영이 90석 중 단 한 석만 빼고 싹쓸이했다. 올 들어 새로 선출된 의원들은 친중 정부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충성선서식도 가졌다. 5월에는 ‘체육관 선거’로 치러진 행정장관 선거에서 중국 정부가 낙점한 존 리(李家超) 전 정무부총리를 99%가 넘는 경이적인 득표율로 선출했다.


지난해 말에는 일국양제 시대의 상징물을 부숴버렸다.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희생자를 추모하는 ‘치욕의 기둥’을 끝내 철거한 것이다. ‘치욕의 기둥’은 톈안먼 희생자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한 8m 높이의 콘크리트 조각상이다. 조각상 하단에는 ‘톈안먼 학살’ ‘1989년 6월 4일’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홍콩 시민사회가 주권반환 직전인 1997년 6·4추모 촛불집회에 맞춰 이 조각상을 홍콩대 교정에 세웠다. 시민사회는 해마다 5월 ‘치욕의 기둥’ 세정식을 열고 6·4추모행사의 시작을 알려 애도 분위기를 조성했다.


올해 첫날 홍콩이공대에서는 학생·교직원 등 수백 명이 참석해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 게양식을 열었다. 홍콩이공대는 2년 전 대규모 반정부시위 때 최선봉에 섰던 곳이다. 지난해 개정된 국기법에 따라 홍콩의 모든 학교는 매주 오성홍기 게양식을 하고 학생들은 중국 역사를 배우도록 해 영국 식민지 역사 지우기에도 나선 것이다.


민주언론 학살도 자행했다. 지난해 6월에 반중(反中)매체 빈과일보(蘋 果日報)가 폐간됐다. 25년 역사에 직원 1천명이 넘는 유력지였지만 중국 당국의 칼날을 결코 피해가지 못했다. 인터넷매체의 폐간도 속출했다. 지난해 말 입장신문(立場新聞)이 경찰이 들이닥쳐 임원들을 줄줄이 체포하자 백기를 들었다. 올초에는 중신문(衆新聞)과 전구일보(癲狗日報) 역시 문을 닫았다. 중국 당국에 눈엣가시와도 같던 매체 네 곳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졌다. 지난달에는 탐사전문 팩트와이어(FactWire)마저 폐업했다. 팩트와이어는 “우리의 핵심가치와 신념을 굳게 지키고 항상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며 “그러나 모든 일에는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이젠 작별을 고해야 할 때”라고 눈물의 폐간사를 전했다.


보안법과 함께 강력한 중국식 코로나19 통제가 지속되면서 홍콩을 탈출하는 이들이 급증했다. 2019년 송환법 반대시위 이후 홍콩인 50여만 명이 ‘영국 해외시민’ 여권을 취득했고, 올해 1분기 홍콩 거주자의 순유출은 10여만명에 이른다. 홍콩 초·중·고생 수만 명 이상이 자퇴해 영미권 유학을 준비하고, 국제 이민박람회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1997년 주권반환 이후 수천 억 달러 규모의 홍콩 경제가 중국 기업들의 손에 넘어가는 등 중국인들이 홍콩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제로 코로나정책의 여파로 아시아 금융허브라는 명성도 크게 퇴색하고 말았다.


시 주석이 그리는 일국양제와 홍콩인이 바라는 일국양제의 시각차는 너무나 커 보인다. 민주진영과 시민사회가 궤멸하고 민주언론이 사라진 홍콩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부러워하던 ‘동양의 진주’가 아니다. 20세기의 화려했던 영화(榮華)는 스러지고 “엑소더스”를 외치는 소리로 가득한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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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환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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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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