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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의 은퇴일기④] 속 쓰린 고통(?)과 이야기보따리…고교동기들과 남도 여행


입력 2022.07.19 14:01 수정 2022.07.17 13:59        데스크 (desk@dailian.co.kr)

홍도, 흑산도, 비금도 거닐어.

답답하게 갇혀 지내다 코로나19 기세가 꺾이자 어디든지 떠나고 싶어졌다. 마침 고교동기들이 홍도, 흑산도, 비금도로 섬 여행을 떠난다고 하여 함께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학창시절 습성과 모습은 그대로였다.


비금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하트 해변ⓒ

2박 3일간의 남도 여행을 떠나기 위해 오전 8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환갑을 훨씬 넘긴 남자 열 명은 목포행 KTX에 몸을 실었다. 푸르름이 절정으로 치닫는 시기인 데다 안개가 흐릿하게 끼어 있어 차창 가의 경치는 더욱 몽환적인 모습으로 펼쳐진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의 이야기는 “좀 조용해 달라”는 승무원의 부탁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다 어느 정도 지나자 잠잠해진다.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흥분으로 학창시절 소풍 가기 전날처럼 밤잠을 설쳤는지 꿈속으로 한 명씩 빠져든다.


젊은 시절 통일호나 비둘기호 바닥에 주저앉아 기타 치고 노래 부르며 여행 다니던 모습이 뇌리에 펼쳐진다. 열차 안의 다른 승객들도 손뼉 치며 합세하거나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보았는데 지금은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것도 눈치 보일 정도로 시절이 바뀌었다.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구수한 호남 사투리로 설명하던 가이드는 여러 팀 가운데 나이 지긋한 남자들만이 모인 우리를 보더니 일탈 가능성이 제일 커 보이는지 잘 들으시라고 강조한다.


우리 배를 따라오는 갈매기 떼

목포항 근처 식당에 들어가자 동기회장은 영지버섯이 10년째 잠수하고 있다는 5리터 담금술병을 내어놓으며 이것을 마시면 10년은 더 살 거라며 너스레를 떤다. 동기들을 위해 무거운 술병을 서울에서부터 들고 오는 정성이 대단하다. 출발도 하기 전에 35도의 담금주를 2/3나 비웠으니 망망대해를 지나 2시간 30분이나 걸리는 홍도까지 무사히 갈 수나 있으려나?. 강산이 변할 만큼이나 오랫동안 잠겨있던 영지버섯 술의 조금 거북한 향에 취기가 올라 나를 비롯한 몇몇은 멀미가 우려되는지 슬그머니 약을 사서 마신다.


1004개의 섬이 있는 신안 앞 다도해를 지나 비금.도초항까지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고 내해(內海)처럼 잔잔하다. 청정지역이라 미역과 파래 같은 해초류를 양식하기 위한 시설이 연안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

도초항을 떠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망망대해로 나오자 배가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내려갔다가 쑥 올라간다. 여자 승객들은 재미난 듯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겁에 질려 조용해지고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진다. 나도 하품이 나더니 식은땀이 흐른다. 배표를 나누어주던 여행사 직원의 이야기가 실감 나게 다가온다. “외해(外海)로 나가 파도가 높아지면 처음에는 하품이 나고 식은땀이 쏟아지다가 음식물을 토해내는 등 정신이 없는 와중에 사람들을 따라 중간 흑산도에서 내릴 수 있다”며 은근히 겁을 준다.


홍도 선착장 옆에서 기념사진 촬영한 일행ⓒ

오래전에 울릉도 갈 때 멀미로 속이 좀 거북했던 것 이외에는 그동안 뱃멀미한 적이 없었는데 속이 울렁거린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왜 이러지? 그동안 몸이 약해졌나? 나이 탓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는 견딜 수가 없어 기어가다시피 뒤쪽으로 가서 비닐봉지에 점심때 먹은 술과 음식을 모두 반납했다.


‘점심때 식사만 할 텐데 괜히 술을 마셨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쓰디쓴 위액까지 쏟아내고 휑한 눈으로 앉아있자 승무원이 선실 바깥으로 나가 보란다.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조금 진정이 된다. 고통스럽게 1시간을 보낸 후에야 흑산도에 도착했다.


홍도까지는 30분을 더 가야 하는데 아득하다. 쓰린 속을 달래며 한동안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게 앉아있자 눈앞에 기다란 섬이 보인다. 돌의 색깔이 붉어 홍도라 불린단다. 얼마나 반갑던지.

농토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깎아지른 절벽에 집들이 붙어있다. 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며 남문바위, 거북바위와 같은 갖가지 이름이 붙은 절경을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면 고깃배가 스르르 달려와 즉석에서 회를 쳐 관광객을 유혹한다. 짧은 시간에 싱싱한 회를 안주 삼아 술병을 비워 줄을 세웠다. 밤에는 안개가 자욱한 바닷가에 나가 한잔하고 숙소에 들어와 한방에 모여 양주로 우정을 돈독히 했다. 그렇게 마시고도 새벽에 일어나 제일 높은 깃대봉까지 다녀온다. 아직도 체력이 대단하다.


아침에 흑산도로 나와 몇 시간 동안 버스로 섬 일주를 하며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았다. 정약전 선생 유배 시 머물렀던 집이 복원되고 유배문화공원으로 조성된 마을에 들렸지만, 운전기사는 복원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보여드리기가 창피하다며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도로변에서 몇마다 하고는 돌아선다. 220년 전 해양생물에 대한 기록과 먹는 방법이 기록된 ‘자산어보’를 저술한 유서 깊은 이곳에 유배문화를 잘 접목한다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흑산도 사람들은 “관광객이 홍도에서 돈을 쓰고 흑산도는 거쳐 가는 곳이라 홍도가 부자 마을이 되었다”라며 부러워한다. 막연하지만 관광객들이 머물다 갈 수 있게 하는 방안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어르신 유모차에 어머니를 태워 밀고 가는 풍경ⓒ

비금도 하트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서 고기잡이 나간 ‘하누’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아직도 해변에 누워있는 ‘너미’와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였다. 해가 뉘엿뉘엿한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어르신 유모차에 노모를 태워 밀고 가는 효자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여 감동으로 다가왔다. 요양병원에 누워계셨던 어머니를 코로나가 심해서 휠체어에 태워 밀어드리거나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한 채 영원히 이별한 것이 생각나 가슴이 저민다. ‘왜 그렇게밖에 못했을까’하는 자책감이 밀려온다.


홍도, 흑산도, 비금도는 해상국립공원으로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일 것이다. 속 쓰린 고통을 겪기는 했지만, 눈이 크게 뜨여지고 가슴은 넓어졌다. 지금은 관광지로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지만 조선 시대까지는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유배지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외롭고 불편했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유모차에 어머니를 태워 밀고 가는 효자를 만난 것이 이번 여행의 큰 기쁨이다. 내년에는 또 어디에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볼까 벌써 기다려진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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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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