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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그룹 '대선 시즌' 불편한 이유 [부광우의 싫존주의]


입력 2022.08.22 07:00 수정 2022.08.23 08:39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3~4연임 당연해진 회장님들

변화·혁신 외침의 아이러니

회사원 실루엣 이미지.ⓒ픽사베이

"대통령도 5년인데 이 동네서 10년은 기본인가 보다."


금융사에 다닌 지 3년이 채 안 된 사회초년생과의 술자리.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나 MZ세대의 허리를 지나고 있는 그는 직장인이 되고 느낀 소회를 곱씹다 취기를 빌려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속한 회사 수장에 대한 이른바 위험 발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 굴지의 금융그룹 회장이라면 10년 가까운 임기가 당연시되고 있다. 3연임, 4연임 등 정치권 중진 국회의원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수식어가 이젠 낯설지 않다. 물론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는 국민이 뽑은 대표가 아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3연임에 성공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연임을 하고 나서야 함영주 현 회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사내 규범에 회장의 나이를 70세로 제한한 규정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김 회장은 현역일지도 모른다.


이는 비단 최근의 흐름이 아니다. 4대 금융그룹 회장을 지낸 11명의 인물 중 7명이 연임을 하며 임기를 연장해 갔다. 대표적으로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4연임을,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3연임을 했다.


다음 타자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다. 내년 3월에 나란히 임기 만료를 맞는 이들은 그 뒤로도 자리를 지키려면 올해 안에 연임을 확정해야 한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금융과 어울리지 않는 정치 용어가 스스럼없이 사용된다. '이미 대선 시즌이 시작됐다'는 호기심부터 '감히 누가 대권에 도전하겠느냐'는 자조적 푸념도 있다.


물론 CEO 선정은 기업 자율에 맡겨져야 할 경영의 핵심 이벤트다. 금융사 측은 '능력이 중요하지 누가 얼마나 하는지가 중요하냐'고 반문한다. 어느 구석에서 봐도 틀린 말은 없다.


하지만 논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해서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칼 같은 순환 보직에 따라 때마다 부서를 옮기는 일개 직원부터 소위 임시 직원이라 불리는 파리 목숨 임원에 이르기까지, 바뀌지 않는 회장님의 존재는 늘 다른 세상의 얘기다.


특히 젊은 세대 입장에서 이런 풍경은 역설적이다. 강산이 한 번 변하도록 바뀌지 않은 회장이 식구들에게 혁신과 변화를 외치는 모습은 어딘가 아이러니하다.


내부에서도 뼈아픈 지적이 나온다. 인사 쇄신의 가장 좋은 방법은 제일 윗사람이 물러나는 솔선수범이란 채찍질이다. 가장 정점의 자리가 비워져야 보다 많은 사람이 한 단계씩 올라설 수 있다는 일반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누군가를 설득할 때 로고스와 파토스, 이토스란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논리를 앞세우는 로고스나 감정을 움직이는 파토스보다 말하는 사람 스스로의 삶이 증명하는 이토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현재의 리더가 조직을 바꿀 수도 있다. 그보다 확실히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리더를 바꾸는 일이다. 당신만 적임자가 아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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