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채 AA+ 3년물 금리 6%↑…고공행진
저축은행 기업대출 70조↑…건전성 위협
금융위기론과 함께 뱅크런이란 유령이 다시 맴돌기 시작했다. 내 돈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은행을 향할 때 자본주의는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물리학 운동법칙을 정립한 아이작 뉴턴도 투자 실패를 맛본 뒤 "별들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쌓아 온 아픈 경험은 앞으로의 위기를 이겨낼 원동력이다. 이제는 더 이상 불확실성이 뱅크런으로 번지도록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팬데믹 이후 금융 불안의 현주소를 점검해보고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백신을 찾아본다.<편집자주>
제2금융권인 카드사와 저축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레고랜드 사태 직격탄을 맞으며 위태로운 모습이다. 이른바 ‘돈맥경화’가 업계를 옥죄면서 자구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지만,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돌파구를 찾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카드, 캐피탈 등 여신전문금융사들의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채권시장안정펀드, 회사채,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등으로 자본시장에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나섰지만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기타금융채 순 발행액은 마이너스(-)3조4423억원으로 집계됐다. 상환액이 5조1330억원에 달했지만 발행액이 1조6907억원에 그치면서다. 여전사들이 그만큼 자금경색에 직면한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설사 신규 발행에 성공했더라도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금리가 연초 대비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실제 지난 21일 기준 여전채 AA+ 등급 3년물 금리는 6.082% 기록했다. 4월 3%대에서 6개월 만에 2배로 상승한 것이다. 은행과 같이 수신 기능이 없는 카드‧캐피탈사들은 자금조달을 위해 여전채, 회사채나 장기CP 등을 발행한다.
최근에는 채권시장이 얼어붙자 은행들이 기업대출 대응을 위해 은행채를 발행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떨어지는 여전채 수요가 줄어들면서 유동성 위기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카드사와 캐피탈사들은 현재 회사채 시장과 단기자금시장이 막히자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을 자체적으로 상환하고 있는 상황이다.
카드사에 비해 신용도가 낮은 캐피탈사들의 경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비중이 높아 리스크가 더욱 크다. 그동안 캐피탈 업계는 오토론 등 본업인 리테일 영업 대신 기업금융, 투자금융 부문에 집중해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캐피탈사 부동산 PF 대출의 건당 평균 잔액 규모는 지난 3월 말 기준 105억3000만원에 이른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산부채관리 측면에서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고 자금조달에 대한 비상계획 등을 마련해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저축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국내 79개 저축은행이 보유한 기업 대출 잔액은 총 70조6845억원으로 전년 동기(21조7917억원) 대비 44.6% 늘었다. 저축은행업권의 기업 대출이 70조원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규제로 개인이 대출을 받기 어려워지자 기업 고객을 상대로 한 영업을 집중해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저축은행 특성상 대기업에 비해 자본력이 약한 중소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향후 여신 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올해 상반기 말 저축은행업계의 기업 대출 가운데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5.6%(67조5958억원) 달한다.
기업대출 외에도 부동산 PF 역시 부실 가능성의 배경이 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5대 저축은행(SBI‧OK‧한국투자‧웰컴‧페퍼)의 부동산PF는 총 2조80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6% 늘었다. 액수로 따지면 8908억원 증가한 규모다.
심지어 그동안 고객 확보의 수단이던 수신금리 마저 시중은행에 따라 잡히면서 수신금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는 우회전략으로 6개월 초단기 예금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예‧적금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는 저축은행 특성상 단기 예금 상품은 되려 유동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인 셈이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졌다가 금리가 인상되면서 기업들이 자금난, 신용경색 등을 겪었다”며 “현재는 그때보다 금리가 더욱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 기업들이 불어나는 상환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금리인상 속도 조절, 세부담 경감뿐만 아니라 유사시 기업 유동성 지원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도 사전에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뱅크런 백신 설명서⑤]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