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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장례식 추모연설에서도 농담 섞는데… [정도원의 정치공학]


입력 2022.11.07 07:00 수정 2022.11.07 07:00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한덕수, 외신기자간담회라는 현장과

청자의 특성 고려해서 처신한 것…

정작 외신은 농담·비유 문제 삼지도

않는데, 국내 정치 세력만 야단법석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이 2015년 6월 찰스턴 총기난사 참사 당시 장례식장에서 추모 연설 도중 돌연 노래를 선창하자, 후열에 앉아있던 교계 흑인 지도자들이 웃으며 일제히 기립해 합창하고 있다. ⓒMSNBC 유튜브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7년 1월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장례식 조사 도중 "최근 그의 공에 맞았다는 사람이 줄었던 것을 보면 골프 실력도 좋아지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는 농담을 던졌다. 포드 장례식장에서 농담으로 조상객들을 웃긴 부시 전 대통령은 2018년 12월 자신의 장례식에서 농담의 대상이 됐다.


러셀 레빈슨 목사는 조사에서 "부시 대통령보다도 (애견) 설리가 언론에도 더 많이 나오고 인기가 있었다"고 농담을 했다. 그 뒤로도 여러 인사들의 조사 순서가 이어지자, 앨런 심슨 상원의원은 조사에 앞서 조상객들에게 "걱정 말라. 조지가 나더러는 10분 내에 끝내란다"고 말해 좌중에서 웃음이 터지게끔 했다.


비단 전직 대통령 장례식 뿐만 아니라 이른바 '사회적 참사'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찰스턴 흑인교회 총기난사 참사가 있었던 2015년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장례식에서 추모 연설을 하던 도중, 돌연 '어메이징 그레이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숙한 표정으로 대통령의 후열에 앉아있던 교계 흑인 지도자들은 대통령의 선창에 웃음을 터뜨리며 손뼉을 쳤고, 이후 기립해 따라 불렀다. 간주 중에 오바마 대통령이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그(그녀)는 은총을 찾았다"고 외치자, 청중들은 일제히 "예이" 하는 추임새를 넣으며 환호했다. 우리와 해외의 정서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화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외신기자간담회에서 통역이 전달되지 않아 경직됐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농담을 하거나, 외신기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월드시리즈에 빗댄 비유법을 쓴 것을 두고 느닷없이 총리에게까지 참사 책임을 묻는 특정 정치 세력이 있다. 이들은 총리까지 경질하라며 정치적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1시간 예정됐던 외신기자간담회에
2시간 20분 넘게 있으며 일일이 답변
해외언론인 대응 경험에서 비롯된
유연한 소통의 진정성은 평가받아야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참배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한 총리는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주로 통상 분야에 복무했다. 상공부 미주통상과장으로 있던 중, 하버드대에 경제학 석·박사 유학을 다녀왔다. 김영삼정부에 청와대 통상비서관으로 들어갔고, 김대중정부에서는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다. 통상교섭본부 자체가 해외관료와 언론인 대응 경험이 많고 해외 정서에 익숙한 한 총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던 자리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한 총리의 농담과 비유는 그 자리가 외신기자간담회라는 것을 감안해 청자(聽者)를 고려한 처신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작 외신기자들은 전혀 문제삼지 않았던 총리의 언행은 간담회가 끝난지 상당 시간이 경과하고나서야 한 sns 이용자의 문제제기와 함께 국내 언론의 보도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외신기자간담회는 엄연히 외신기자가 대상이다.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를 특정 성향의 sns 이용자까지 일일이 고려하면서 문답을 나누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한덕수 총리는 1시간으로 예정됐던 외신기자간담회에 2시간 20분 동안 있으면서 모든 질문을 소화하고 성심성의껏 답변했다. 통역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일순 경직됐던 순간에 '정지화면'으로 있었더라면 오히려 총리의 대응 능력이 의심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외신 대응에서 소통의 진정성이 전달됐다는 게 중론이다.


비슷한 시기,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국내 언론과의 기자회견이 시작된지 불과 7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질문을 하면 다 소화를 해야 하는 것이냐"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이러한 태도를 대조해보면 정작 경질이 돼야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장과 청자의 특성을 고려해 유연하게 소통을 하는 한 총리의 진정성 있는 자세는 오히려 평가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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