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디케의 눈물 ㊴] 故 문덕호 전 핀란드 대사 '순직 인정'이 남긴 것


입력 2022.11.09 05:02 수정 2022.11.09 10:49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故 문덕호 대사, 부임 5개월 만에 급성 백혈병 진단 받고 치료중 사망

유족 급여신청에 인사혁신처 "근무 환경에 백혈병 유발 요인 없어"

법조계 "인과관계 입증 중요…스트레스로 면역력 떨어지면 백혈병 악화, 순직 처리"

"순직 인정되면 유족들이 겪었던 시간·고통 보상도 해줘야…정부 순직 인정 심사 더욱 신중해질 것"

서울중앙지방법원.ⓒ데일리안 DB

문재인 정부 시절 핀란드 대사로 부임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다 5개월 만에 현지에서 숨진 문덕호 전 핀란드 대사가 순직을 인정받았다. 법조계는 순직을 인정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라면서, 순직이 인정되면 유족들이 그동안 겪었던 시간과 고통에 대한 보상도 뒤따라야 정부의 순직 인정 심사가 더욱 신중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문 전 대사 유족이 인사혁신처를 대상으로 제기한 '순직유족급여 부지급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2018년 11월 핀란드 대사로 부임한 문 전 대사는 2019년 4월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사망했다. 유족은 고인의 사망이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인사혁신처에 순직유족급여 지급을 청구했으나 인사혁신처는 "고인의 근무 환경에 백혈병을 유발할 만한 요인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문 대사는 5개월 동안 한국 대표단의 핀란드 방문 21건 지원, 겸임국 및 핀란드 국내 출장 8회, 공공외교행사 2번 주관, 대사관 공간 개선 및 청사 국유화 추진을 수행했다. 특히 부임 3개월 만에 문 전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13년 만에 추진되면서 국빈 행사의 총괄 책임자로 주요 의제 설정, 추가 일정 계획, 성과사업 발굴 등을 위한 업무를 수행했다.


핀란드 대사관은 외교부 소속 인원 4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공간인데, 실무를 총괄하는 참사관급 직원의 국빈 행사 등에 관한 경험 및 역량이 부족해 문 전 대사가 실무적인 준비 협의, 행정적 보고에 직접 관여해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사는 2019년 2월경부터 기침, 콧물 등 감기 증상이 있었고 병원 진료를 받았으나 알레르기 치료를 위한 약물을 처방받는 정도에 그쳤다. 계속해서 이상증세가 나타났지만 업무에 매진했고, 병가나 휴가를 한 차례도 내지 않았다. 4월 22일 스스로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자 병원에 입원했으나 '급성 단모세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일주일 만에 사망했다.


1등 서기관으로 고인을 보좌했던 증인은 "참사관급 직원이 국빈행사에 관여하지 않았고 근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실무 서기관의 기안을 참사관의 중간 결재 없이 고인이 직접 결제했다. 사실상 차석의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너무 힘들어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국빈행사가 13년 만에 추진돼 고인으로서 성공적인 계획 수립 등에 부담을 갖고 무리하게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국빈행사와 국회의장 방문 행사의 준비기간이 중첩되어 업무 부담이 가중된 점 ▲참사관으로부터 업무상 조력을 거의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점 ▲연이은 행사 및 정상행사 준비로 충분한 휴식을 취학 수 없었던 점 등을 이유로 들어 '순직유족급여 부지급 결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데일리안 DB

법조계는 순직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업무와 질병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원곡 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사실 산업재해와 같은 맥락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대사는 근무시간이 들쭉날쭉해 애매했을 것"이라며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나 산재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의사 출신 정이원 변호사는 "급성 백혈병이 과도한 업무로 생길 수 있는 병은 아니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면 더 빨리 진행될 수 있다"며 "월등히 빨리 악화되면 순직 처리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정 변호사는 "예전에는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많이 다쳐서 회복이 아예 안 되는 경우만을 인정해줬다"며 "최근에는 의학기술이 발달되면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부연했다.


법조계는 순직을 인정받은 이후에도 남은 유족들을 위해 제도적 보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 변호사는 "현재 유족들이 긴 소송을 이기면 순직 인정과 변호사비 정도를 돌려받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동안의 시간과 고통에 대한 페널티도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행정청은 인정해주지 않고 소송으로 가서 법원의 판정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페널티가 있다면 순직 인정 심사를 할 때 더욱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그러면서 "최근 군 의무복무 중 사망한 경우에는 아예 순직 처리되는 것으로 법이 개정돼 입증 책임이 행정청에 있도록 바뀌었다"며 "공무상 재해나 산재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순직으로 인정되는 사례가 많아지면 공무원들에게 일하는 동력 등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 변호사는 "소송까지 갔다는 건 여러 번 정부에서 거절했다는 것인데, 폭넓게 인정해주는 쪽으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사례가 있으면 그걸 바탕으로 인사혁신처나 근로복지공단에서도 판단을 하니까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겠나. 보장되면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디케의 눈물'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정채영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