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 앰부시 마케팅 규정 강화
체크카드‧수수료 실적 ‘급감’
카타르 월드컵이란 글로벌 호재에도 불구하고 국내 카드업계가 관련 마케팅을 자제하고 있다. 또 최근 수능을 치룬 수험생 대상 카드 할인 혜택도 자취를 감추는 등 조용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카드사들의 영업 환경이 소소한 소비자 혜택에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7개 전업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들은 올해 카타르 2022 월드컵 관련 이벤트를 실시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월드컵 등 글로벌 축제 때마다 활발한 마케팅을 펼쳐왔던 것과는 정반대 행보다.
카드사들은 우선 국제축구연맹(FIFA)이 공식 후원사가 아닌 경우 관련 규정에 따라 ‘월드컵’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규정은 최소 10억 달러 이상 후원한 공식 후원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FIFA의 조치다.
그동안 카드사들은 그동안 월드컵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국가대표팀 응원’ 등 광고 문구를 통해 월드컵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 그러나 FIFA가 앰부시 마케팅을 펼치는 업체에 대해서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규정을 강화하자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금융권은 카드사들이 업황 악화가 지속되고, 실적도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규제가 강화된 월드컵 이벤트까지 소화해 낼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선 한국 국가대표팀 성적이 좋을 시 뒤늦게 월드컵 이벤트를 펼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밖에 카드사들은 지난 17일 진행된 2023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특수도 포기하고 있는 분위기다. 카드사들은 매년 수능 전후로 수험생과 그 가족에 대해 자동차학원·문화공연·미용 할인 등 다양한 이벤트를 펼쳐왔다. 카드사 입장에선 곧 성인이 될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이 미래 고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국민카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카드사들이 별다른 이벤트를 내놓지 않고 있다. 수험생 등 사회 초년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체크카드 결제가 줄어들고, 카드사들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수료 역시 급감하고 있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3년마다 적격비용 재산정을 통해 중소·영세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카드 수수료율을 인하해 왔다. 올해는 연매출 30억원 이하 우대 가맹점의 카드수수료를 0.8~1.6%에서 0.5~1.5% 수준으로 낮춘 상태다.
이밖에 카드사들은 오는 25일 블랙프라이데이와 내달 크리스마스 관련 마케팅도 예년보다 대폭 축소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비자 혜택도 줄이고 있는 추세다. 카드사들은 기존 무이자 할부 혜택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축소하거나 배송비 할인, 캐시백 혜택도 축소하고 있다.
카드업계가 이처럼 연말 이벤트를 외면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것은 계속되는 금리 인상으로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수신 기능이 없는 카드사들은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으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금리 인상으로 조달비용이 늘어난 데다 최근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채권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이다.
올해 초 2.420%였던 여전채 AA+ 3년물 금리는 레고랜드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난달 21일 6.082%로 최고치를 찍으며 6%대로 올라서는 등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조달 금리 상승 영향으로 업계 상황이 좋지 않다”며 “이런 가운데 정작 가맹점 수수료 체계 개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등 대내외적인 압박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 긴축 경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