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 풍동, 최고속도 마하 30 실험 환경 갖춰
미사일방어(MD) 체계로는 요격 불가능한 ‘게임 체인저’
中, 마하 10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17을 이미 실전 배치
중·러에 뒤진 美, 극초음속 미사일 추적 위성 개발 나서
지난 2021년 여름, 중국은 미국에 ‘스푸트니크의 쇼크’(Sputnik Shock·냉전시대인 1957년 10월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해 받은 충격)을 안겼다. 중국이 시험 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이 지구를 한 바퀴 반을 돌아 목표물 타격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두 달여가 지난 10월27일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극초음속 무기시험 사실을 공식 확인하면서 “우리가 본 것은 극초음속 무기시스템 시험이라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며 “그게 바로 ‘스푸트니크 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매우 가깝다고 생각한다. 매우 우려된다”고 경계감을 드러냈다.
중국이 극초음속 무기 개발 등에 사용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풍동’을 완공했다고 관영 중국중앙(CC)TV 등이 지난 6일 보도했다. 풍동(風洞·wind tunnel)은 인공적으로 바람을 일으켜 빠르고 강한 기류가 비행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는 터널형 장치다. 중국이 미국, 러시아 등과 불꽃튀는 경쟁을 벌이는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위한 필수적인 시설로 꼽힌다.
CCTV 등에 따르면 풍동을 운영·관리하는 중국과학원 역학(力學)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착공 5년 만에 풍동 ‘JF-22’ 최종 평가를 마무리했다”며 “길이 167m, 지름 4m 규모의 풍동에서 최고 속도 마하 30(초속 10.2㎞)까지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기존 풍동 JF-12는 최고속도 마하 9(초속 3.06㎞)까지 시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소속 환구시보(環球時報)도 “베이징(北京) 북부 화이러우(懷柔)구에 건설된 풍동 JF-22는 세계 최대이자 최강 풍동”이라고 치켜세우며 “중국이 보유한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東風·DF)-17의 최고속도가 마하 9~10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보다 훨씬 더 빠른 미사일이 탄생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풍동의 크기가 커지면 보다 대형 항공기 모델이나 실제 크기의 극초음속 무기를 이용해 더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현재 개발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은 대부분 지름이 4m 미만이다. 역학연구소는 “JF-22가 중국의 우주운송 시스템과 극초음속 항공기의 연구·개발을 지원할 것”이라며 2012년부터 가동 중인 풍동 JF-12와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극초음속 무기와 항공기를 시험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JF-12는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의 비행 환경에서 시험을 할 수 있고, JF-22는 보다 빠른 속도의 시험환경을 갖추고 있는 만큼 양쪽에서 얻은 데이터를 결합하면 각각 다른 물질과 디자인이 다양한 비행조건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극초음속 무기나 항공기의 성능과 신뢰성을 높여준다고 SCMP는 지적했다.
역학연구소는 특히 이 시설이 극초음속 무기나 항공기 개발에 있어 중국이 경쟁국을 몇 년 더 앞서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오는 2035년까지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한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극초음속 항공기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매년 수천 명의 승객을 우주로 보내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런 만큼 중국 극초음속 항공기 개발에도 JF-22는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풍동 시험은 극초음속 항공기가 비행할 때 발생하는 극심한 열과 압력을 견뎌내면서 승객들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SCMP는 전했다.
중국과 기술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으로서는 고민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미국이 보유한 풍동은 지름 0.8m 규모로 최고 속도 마하 10(초속 3.4㎞) 정도의 비행 실험을 할 수 있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극초음속 무기는 음속보다 5배 이상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까닭에 기존 미사일방어(MD) 체계로는 요격이 불가능한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특히 극초음속 미사일은 탄도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과 달리 지구상의 목표물을 1시간 이내에 타격하려는 공격 수단이다. 미사일 발사체에 음속의 5배가 넘는 극초음속 활공체(hypersonic glide vehicle·HGV)를 탑재해 MD를 무력화시키는 게 목적이다.
HGV는 탄도미사일에 글라이더 형태의 활공체를 탄두에 탑재해서 발사하는 방식이다. 곡선을 그리면서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서 낙하하는 방식인데, 충분히 속력을 얻은 종말(하강) 단계에서 포물선으로부터 궤도를 바꾸어 글라이더처럼 수평 비행으로 활공한다.
군사안보 질서와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극초음속 무기는 상대편의 반격이 두려워서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억지력도 핵무기 못지않다. 이 때문에 극초음속 무기 개발과 배치 등에 대한 세계 각국의 경쟁은 치열하다. 이 경쟁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앞서가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뒤처졌다고 SCMP는 평가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지난해 5월 전쟁에서 처음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사용한 나라로 ‘등재’됐다. 당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지방군사령부는 러시아 전투기에서 발사된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 3발이 관광시설을 폭격했다고 밝혔다. 같은 달 28일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치르콘'을 시험 발사해 1000㎞ 거리의 목표물을 타격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이미 마하 20의 '아반가르드' 미사일 등을 실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도 마하 10의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東風·DF)-17을 실전 배치했고, CH-AS-X-13라 불리는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배치도 머지않아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지난해 7월 중국 시베이(西北)공업대 연구진이 자체 개발한 극초음속 발사체 페이톈(飛天)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 발사체에는 로켓에 공기흡입식 엔진을 결합하는 기술이 사용됐다. 공기흡입식 엔진은 외부에서 유입된 공기로 연료를 연소시키는 방식이다. 기존 극초음속 발사체보다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고 저공비행도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기술을 이용하면 자체 힘으로 날아가는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개발까지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최근에서야 극초음속 무기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 공군은 지난해 5월 캘리포니아주 남부 해안에서 전략폭격기 B-52H가 마하 20의 공중발사 신속대응 무기( AGM-183A ARRW)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각국이 극초음속 무기개발 경쟁을 벌이는 것은 전쟁 억지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티모시 히스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금은 이를 막을 방어체계가 없어서 서방 국가들이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해 억지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들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맬컴 데이비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박사도 "우리는 극초음속 무기경쟁의 시작을 목도하고 있다"며 "극초음속 미사일의 경우 선제공격의 싸움이 될 수 있다. 먼저 쏘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극초음속 기술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다고 판단한 미국은 13억 달러(약 1조 6000억원)를 투입해 중·러 극초음속 미사일을 추적하기 위한 위성 개발에 나섰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2025년까지 미사일 탐지와 추적 시스템을 우주 공간에 구축하는 내용의 계약 2건을 공개했다.
계약에 따르면 미 항공업체 L3해리스테크놀로지와 노스럽그러먼전략우주시스템 등 2곳은 2025년까지 극초음속 미사일 탐지·추적용 위성 28대를 우주궤도에 쏘아 올리게 된다. 13억 달러는 순수하게 시스템 구축에 투입하는 비용이며, 발사와 지상조업 등 부대비용까지 합하면 모두 25억 달러에 달한다.
데릭 투니어 미 우주개발청장은 “중국과 러시아는 극초음속 미사일과 발사체를 개발해왔으며, 이 무기들은 기동성이 매우 뛰어나다”며 “새 위성을 배치하면 (중국과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과 발사체의 움직임을 감지·추적해 타격지점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